✠ 요한 복음 6,1-15
오늘 복음, 빵기적 사화는 유일하게 네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빵을 많게 해주신 기적에 집중하기보다는 분배하는 가운데 많아졌다는 사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가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코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이 슬픈 현실입니다.
[유엔의
세계 식량 위기 보고서: 59개국에서 심각한 식량 위기가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섯 명 중 한 명은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신 세계 식량 위기 보고서(Global Report on Food Crises, GRFC)에 따르면 2023년 59개 국가와 지역에서 약 2억 8,2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위기(acute hunger)를 경험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2,400만 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가의 배경에는 보고서의 조사 지역이 확대되고 특히 가자지구와 수단의 식량 안보가 급격히 악화된 데 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32개국에서 5세 미만 어린이 3,600만 명 이상이 급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등 어린이와 여성이 이러한 기아 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23년에는 특히 분쟁과 재난으로 인해 난민이 된 사람들 사이에서 급성 영양실조가 더욱 악화됐다.]
어떤 이는 너무 먹어 비만증에 걸리고, 지구 다른 편에는 굶주려 죽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우리 모두가 나누기만 하여도 식량은 모자라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충분히 가졌는데도 더 가지기 위해 재산싸움은 예나(루카12-21 참조) 지금이나 계속됩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9)
오천명이 훨씬 넘는 많은 군중에 비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빵을 왠 아이가 재지 않고 내어놓습니다.
계산없이 아낌없이 내놓는 행위가
예수님의 빵기적에 한몫을 톡톡히 합니다.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13)
어쩌면 내몫을 내어놓으면 나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서로 눈치보며 먹지못하고 있던 이들이 내어 놓기 시작하니 그렇게 많이 남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빵기적이 아니라 나눔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나누는 기적의 시작은 '익명의 아이'부터 시작됩니다.
세상의 궁핍에 비하면 나의 봉헌은 무슨 소용있냐는 생각이 나눔을 인색케 하고 나하나쯤은 괜찮겠지 생각되어 버리고 쓰는 행위가 환경파괴로 이어진다는 인식을 오늘 복음 앞에서 해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빵을 많게 하는 마술을 부린 것이 아닙니다.
이 나눔의 절정은 성체성사입니다.
예수님은 훗날 "너희에게 줄 빵은 내 몸이다."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썩어없어질 빵이 아니라 진정 생명을 가져다줄 이 빵을 주시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실 것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습니다.
빵만으로 유지하는 생명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참 생명은 내 것을 조건없이 내어놓는 사랑으로 얻습니다.
성체성사는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을 먹는 것입니다.
제병 한조각만 먹고마는 영성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