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0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by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posted Jul 11, 202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4년 7월 10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사람을 뽑아 쓸 때, 보통 유능해 보이는 사람을 고른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학식이 깊지도 않았고, 집안이 좋은 사람도 없었다. 재산이 많거나 인격이 출중하거나 리더십이 뛰어난 사람도 없었다. 대체적으로 무식한 어부들이 제일 많았고, 항간에 소문이 안 좋았던 세리 마태오도 있었으며 열혈당원 시몬도 있었다. 둘은 그 당시 사회적인 정황으로 볼 때, 견원지간이었다. 세리는 로마 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매국노였다. 그에 반해, 열혈당원은 당시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이 독립만 할 수 있다면, 무장 투쟁도 불사하던 사람이었다.

루가 복음서에 나오는 열두 제자들 부르시는 장면을 보면, 예수께서는 그 제자들을 뽑기 전에 밤새도록 기도하셨다. 이는 마치 모세가 야훼 하느님의 뜻을 받기 위해 시나이산에 올라갔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탈출 19,3 참조). 우리들의 눈에는 무어 그리 대단한 사람들을 뽑은 것 같지도 않은데,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뽑아 부르시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에게 악령을 제어하는 권능도 주시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고치는 치유의 능력도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 곳곳에서 언급되듯, 주님의 십자가 상의 죽음과 부활 이전의 열두 제자들은 한마디로 오합지졸이었다. 예수님마저도 때때로 당신의 제자들이 신앙이 없는 것에 한숨을 내쉬곤 하셨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서 모두 이러한 예수님을 정확하게 증언한다 : «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 내가 언제까지 여러분 곁에 있어야 합니까 ? 내가 언제까지 여러분을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 »(마르 9, 19)

그러나 사도행전과 사도들의 서간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듯, 당신의 제자들은 주님 부활 이후 새로 태어났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만큼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제자들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일까 ?

성경은 그들이 성령을 받고는 그렇게 변화되었다고 증언한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부활이 그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그들을 통하여 예수께서 여전히 현존하고 계시는 것임을 확증해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제자들의 이러한 변화는 하루 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 선포의 권한과 마귀를 쫓는 능력, 그리고 치유의 능력은 하느님 나라의 왕권에 대한 징표다. 아무에게나 쉽게 넘겨 줄 성질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효과적이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이양하고 위탁하셨다. 신적인 능력이나 권한마저도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하느님을 위해서는 내어 놓으셨다. 주님께서는 성자로서의 권한을 결코 독점하지 않으셨다. 부활하신 이후에는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후 당신 스스로 물러나셔서, 승천하셨다. 청출어람이청어람靑取之於藍而靑於藍이요 빙수위지이한어수氷水爲之而寒於水라, 쪽이라는 풀에서 나온 푸른 빛이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로 이루어졌지만 물보다도 더 차다는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編에 나오는 이 말이 딱 들어맞는 케이스가 예수님과 당신의 제자들이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의 잣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자랑거리를 내세우는 허풍쟁이도 아니었고, 열등감으로 뒤처져 있는 비굴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자신의 일에 충실하던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뽑으신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그 제자들 중에 낄 수 있다는 용기도 생긴다. 주님께서는 가장 평범한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이나, 스스로 자만하는 사람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을 당신의 제자로 선택하셨다. 우리들이 살아 가고 있는 이 나라 이 땅의 오늘의 현실은 진심으로 바란다. 정직한 사람, 진실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말이다. 그래서일까? 예수께서 제자들을 선발하실 때의 그 선택기준이 오늘날 이 나라 이 땅에서, 아니 맨 먼저 교회 안에서부터라도 적용되고, 실현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한 바램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샘솟는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거짓말하는 사람이 더 잘사는 세상’이라고 낙담하지 말고, 내 스스로가 먼저 진실하게 정직하게 살아감으로써 주님께서 전해주신 생명의 빛을 이 세상에 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 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