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일(나해, 2024년 7월 7일) 강론
7월도 벌써 한 주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금년은 장마도 예년에 비해 일찍 찾아온 것 같습니다. 특히 날씨가 흐리거나 좋지 않을 때는 마음도 우울해지거나 불쾌지수가 높아지기 쉽습니다. 이때 일수록 감정을 잘 조정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자렛 고향에서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다른 곳에서 맹활약을 보여 명성을 얻어가고 있던 터에 들렀던 고향인데 대접이 영 시원치 않았습니다. 한 동네 살면서 자주 봐왔던 예수님을 고향 사람들은 예언자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웠던지 한편으론 매우 놀라는 눈치입니다. “아니 쟤는 언제 저런 걸 알았지? 어디서 저런 기적의 능력을 얻은 거지? 저거 믿을 수 있는 건가? 혹시 사이비 아냐?” 이와 같은 이야기가 오고 갔을 법합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은 변변한 인물 한 명 배출하지 못한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이런 형편에 권위 있는 가르침과 기적을 행한 예수님을 두 손 들어 환영할 법도 한데 고향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선입견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하느님에 대한 선입견이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하시고 처벌하시는 두려운 하느님 상이 있겠고, 어떤 이에게는 하느님이 도깨비방망이처럼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 주시는 기적의 하느님 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우리 신앙인들도 지상의 재물과 부귀영화를 인생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기도 합니다.
타인의 능력이나 업적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첫 번째 태도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더구나 자기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의 업적에 대해서는 더욱 냉정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질투심인데 거기에는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는 자기 보호 본능이 배여 있습니다.
두 번째 태도는 무조건적인 인정과 모방의 태도를 보인다고 합니다. 특히,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이들에 대해서는 맹신이나 숭배의 태도까지 보입니다. 영웅들의 신화는 이런 태도로부터 탄생합니다. 나도 영웅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적 자기 투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는 끊임없이 영웅의 탄생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인기 있는 아이돌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태도는 외견상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의 근본적 동기는 같은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태도의 뿌리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교만함이 있다는 말입니다. 타인의 업적을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과대포장하려 하거나, 영웅이나 인기 아이돌의 모습에서 자신의 능력을 투사함으로써 스스로 슈퍼맨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한 심리학자는 인간의 무의식 안에 극복할 수 없는 치명적 한계, 즉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상존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영웅을 탄생시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려 합니다. 이는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용기 없음, 혹은 교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장점보다는 약점을 자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고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 병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자신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깨닫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자신 속에 있는 치욕스러운 모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겸손의 모습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의 능력에 대해서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누구와도 거리감을 두지 않으셨던 자유인이며 겸손의 표본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려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일상에서 있는 그대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시기나 질투 혹은 열등의식 그리고 어떤 교만함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는 공동선을 위한 노력과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점점 더 위축되고 각자도생이라는 개인주의와 집단이기주의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평화를 건설하고 정의를 이룩해야 할 사명은 사회의 지도자를 비롯한 모든 계층에도 요청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가르침의 중심인 사랑으로 무장하고 겸손과 용기를 통해 점점 더 각박해져 가는 이 사회에 사랑의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