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고정관념
우리가 키우지 말아야 할 개 두 마리가 있다고 합니다. 편견과 선입견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나자렛 고향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
“목수가 아닌가?”-직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가?”-홀어머니 가정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친척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살고 있지 않는가?”-출신 지역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것은 주님의 기적까지도 가로막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고향 사람들에게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기적을 일으킬 수 없었다고 오늘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편견과 선입견의 폐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편견과 선입견에 빠지면 내 판단과 경험이 다 옳다고 여기고 상대방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편견과 선입견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그리고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해 보지 않고 내 임의대로 추측하고, 함부로 떠벌리고 다닙니다. 편견과 선입견은 색안경이라는 왜곡된 마음과 지나친 자기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또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리려는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결국 편견과 선입견은 주님까지도 낭떠러지로 몰아세우게 했고,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사제와 원로, 율법교사와 바리사이들의 편견과 선입견이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고발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은 이렇게 하느님까지도 심판하고 처단하게 만드는 악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편 교우들 간의 편견과 선입견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파괴시킵니다. 성당 안에서는 직업의 귀천이 없을뿐더러 재력, 학력, 사회적 위치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신앙생활의 기간과 봉사자 경력이 반드시 그 사람의 인격과 영성의 깊이와 직결되지도 않습니다. 성당 짬밥이 많다고 해서 꼭 믿음이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소식통만 믿고 혹은 남이 전해주는 와전된 말만 듣고 남의 허물과 과거를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개 두 마리가 성당을 개판으로 만듭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합시오. 예수님은 진리와 거짓을 구분하셨지만 의인과 죄인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연민과 사랑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늘 한결같았습니다. 주님은 항상 하느님 자비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셨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은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교만하기 때문에 생기는 잘못된 마음의 눈입니다. 자, 이제 나도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조정하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은 없는지 돌아보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