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나해, 2018년 7월 1일) 강론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연중 13주일이면서 교황주일로 제정한 날입니다.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가장 가까운 주일을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님을 기억하는 날로 정해/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오늘은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지요.(2차 헌금 전액은 로마 교황청으로 보내드리게 됨)
미국의 흑인 외교관으로서 처음으로 195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랠프 존슨 번치 (Ralph Johnson Bunche 1904-1971, USA)’입니다.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1948년, UN의 협상 대표가 암살되자 그가 이 일을 이어받아 탁월한 협상 능력으로 휴전을 이끌어 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세상에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은 없습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지도자들이 있을 뿐이지요.”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평화와 특히 유색인종을 위한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1971년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큰일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은 그의 어린 시절에 있었습니다. 그의 집은 매우 가난했으며 그가 열두 살 되던 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시에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어머니의 마지막 한 마디가 평생을 두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는데 운명 직전 어머니는 랠프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랠프야, 너에게 물려 줄 것이 한 가지도 없구나. 그러나 엄마의 말을 잊지 말아다오. 아무리 괴로워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알겠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잊지 마라.”
그 이후로 그는 L.A에 사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 힘겹게 공부를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인종차별과 가난의 어려움으로 수십 번 학교를 그만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어머니가 최후로 남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버리지 말라는 유언을 떠올리며 극복하였습니다. 소아마비 장애까지 있었던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국제기구를 통해 세계 평화와 소수 민족의 인권을 위해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산은 어떤 물질적인 것보다 훨씬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그 힘은 병들고 가난하고 천대받는 흑인으로서, 게다가 어렸을 때 부모를 한꺼번에 여의는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던 에너지였습니다. (이는 우리 교회의 신학적용어로 본다면 하나의 성사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외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도 랠프 번치의 어머니와 같은 힘을 주는 유언을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바로 열두 해나 하혈병을 앓던 여인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기적 이야기에는 공통으로 전제되는 내용이 따릅니다. 즉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강한 믿음과/ 낫게 되고 살게 되리라는 희망이 전제되었기 때문입니다. 하혈병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잡으면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고 예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에게도 딸이 살아나리라는 믿음을 촉구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이 세상에 모든 희망을 걸다가 끝내 이 세상에서 종말을 고할 슬픈 인생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떠한 역경과 고통에서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예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에게 하신 명령은, 희망을 살지 못하고 세상살이에서 절망의 발걸음으로 쓰러져 허우적대는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명령의 말씀인 것입니다. “일어나라!”입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으실 것처럼 보이셨던 십자가 길의 예수께서도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수없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이에 우리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신뢰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 겸손하게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고 은총을 청한다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힘이 우리 안에 차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일어서지 못하고 넘어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미사에 참례하러 오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매사에 열심히 준비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준비 없이 의무감 때문에 미사 참례에 오시는 분들은 성당 뒷자리에 앉아 주보나 뒤적거리다가 미사가 끝나기 무섭게 성당 문을 빠져 나가 버립니다. 만일 제대에 유명가수 임영웅이나 방탄소년단이 공연을 한다고 했으면 서로 앞자리를 앉으려 할 것입니다.
또한 공동체가 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그저 주일미사 의무만 채우면 된다는 태도입니다. 그들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군중들처럼 예수님을 구경하러 왔을 뿐 예수님께 간절히 청할 것도, 그분에게서 바랄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 주위에서 밀쳐대지만,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은총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정성껏 미사에 참례하여 성체 앞에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영성체로써 주님과의 일치를 체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님의 손길이 자신에게 머무르고 있음을 믿고 그 힘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확고한 믿음과 간절한 희망으로, 당신께 다가온 사람들에게 당신의 손을 내미시며 그들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오늘도 예수께서는 삶에 지쳐 당신께 다가와 은총을 청하는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일어나시오’ ‘탈리타 쿰!’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