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오복음 16,13-19
오늘은 교회의 두 기둥인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교회는 일찌감치(4세기부터) 이 두 사도를 함께 교회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로 기억해 왔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너무 달랐지만 똑같이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도들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예수님을 따라 나선 때부터 다혈질의 급한 성격, 덤벙대는 모습으로 전혀 수제자감이라고 보기 어려웠던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그에게 “너는 행복하다......”라고 하시지만 이어지는 복음을 보면 그를 사탄이라고 부르시기까지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는 예수님을 배반까지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십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부활하시고 베드로를 만난 그 이른 아침,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너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의 배반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꾸중도, 요구도 없이 당신 양떼를 맡기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비에 대한 체험 덕분에 차츰 반석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차츰 우리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던 것에서 오로지 주님께 의탁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베드로에 비해 바오로는 출신성분도 좋고, 똑똑하고, 언변도 뛰어났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잘난 이를 그냥 쓰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그를 치지 않으시면 자기가 잘나서 해내는 줄로 알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수없이 꺾이는 체험은 실패의 표시가 아니라 제대로 걸어가고 있다는 표시이며, 만약 완전히 무너져버린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더미에서 집을 지으십니다.
그리고 그 집은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그런 집일 것입니다.
고린토 후서 12장 9절에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물 수 있도록... 나의 약점을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원래 사울이라는 이름이었는데 바오로로 바뀝니다. 바오로는 작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로마식 이름이지만 그가 굳이 이 이름을 사용한 것을 보면 그뜻을 새겨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꾸중하기 보다는 잘하라고, 강해지라고 격려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오늘 두 분의 축일에 묵상하게 되는 것은 그렇게 하는데 마음과 힘을 쓰는 것보다도 상대를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마음과 힘을 더 많이 쏟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위의 묵상 내용은 십 여년 전에 이연학 요나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듣고 적어둔 메모를 토대로 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