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일 화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 통일 기원 미사 강론

by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posted Jun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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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5일 화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 통일 기원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나는 6.25를 겪은 세대가 아니다. 6.25라는 것이 민족의 아픔이며 비극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겪은 세대는 아니다. 오히려, 6월만 되면,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던” 우리네 국군은 영웅들이고, 북한군은 전부다 괴뢰군, 빨갱이들이라고 목이 쉬어라 노래 부르며 자라난 세대다. 6.25는 그저 적에 대한 증오, 미움, 복수 등으로만 배워온 세대다.

6월 25일은 슬픔과 아픔, 그리고 증오심이 교차하는 날이다. 하지만, 또한 동시에 우리들은 신앙인이기에, 6.25의 노래처럼 맨 주먹 불끈 쥐고 보복하기에 앞서 6.25가 가져다 주는 신앙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날이기도 하다.

성경에는 분명 6.25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6.25와 비슷한 일들이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도 있었음을 증언한다. 사실 성경은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그저 관념이나 뜬구름 잡는 소리로 전하지 않는다. 성경은 인간의 역사, 전쟁, 불목, 분열, 선악, 등 이 세상의 현실을 담지하고 있는 산 증언록이다. 성경은 또한 인간 역사의 현실 속에 내재한 깊은 뜻, 하느님의 섭리, 현상 속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밝혀낸 유대민족 공동체의 산물이기도 하다.

6.25를 겪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일제의 침입과 약탈에 있다. 36년이라는 식민지 생활을 겪으면서 이 땅의 백성들은 바람 앞에 선 한 자루 촛불처럼 외세의 강렬한 태풍 앞에서 이리 저리 흔들려야 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한 이 땅이었지만, 이내 38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국, 북쪽은 구소련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사실 6.25 전쟁은 미국과 구소련 간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땅의 백성이 일본의 식민생활을 한 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한 것에 비길 수 있다.

바빌론 유배 생활에서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면서도, 동시에 그 큰 비극의 원인이 바로 공동체 전체와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불충실했고, 특히 하느님의 말씀을 잘 이행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제의 침략을 받아서 백성들이 핍박 받고, 징용과 징병에 끌려가고, 앳된 소녀들이 일본군의 위안부가 된 것이 메이지 유신에 성공하고, 근대화를 일찍 이룩했던 일본이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라가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있었고, 매국노들이 판을 치고 있었고, 친일파에 적을 두어야 출세라도 할 수 있었던 당시의 이 땅의 상황들은 마치 바빌론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의 상황과 참으로 많이 닮았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의 재건을 위해서 맨 먼저 하느님께 매달렸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분열과 패망이 하느님 사랑의 채찍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이 땅의 백성은 6.25 전쟁이 끝나고 6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직도 6.25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저 동족 상잔의 비극 정도로 생각하고, 나라가 힘이 없으면, 다른 나라의 먹잇감이 되어 버린다는 이치를 깨닫게 해준 사건 정도로 생각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바빌론 유배의 의미를 그렇게 해석한 것이고, 이 땅의 백성에게는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없기 때문에 6.25 전쟁을 신앙적으로 해석할 재간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6.25 전쟁은 인간군상의 욕망들이 빚어낸 시련이었고, 비극이었다. 비록 이 땅에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없었을지라도, 하늘님에 대한 신앙도 있었고, 천지신명에 대한 신앙도 있었다.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하고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이상도 있었다. 그런 신앙과 이상을 인간군상의 욕망들이 모두 깡그리 짓밟아 버렸던 사건이 바로 6.25 전쟁이다. 인간군상의 욕망들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어디까지 그 광기를 번뜩일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 바로 6.25전쟁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날, 나는 예언자의 소명을 가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주목하고 싶다.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었을 때, 남쪽의 유다, 북쪽의 이스라엘로 나뉘어졌을 때, 예언자들은 그 분단의 벽을 깨고, 남북을 넘나들면서 남북 모두를 함께 꾸짖으며, 인간성의 회복과 하느님께로 되돌아 가야 한다고 외쳤다. 이러한 예언자의 소명을 이어 받은 이들이 다름 아닌 우리다. 한민족의 역사 앞에서 우리들 그리스도인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예언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하면, 우리는 반드시 욕을 얻어 먹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너무 정치적이라고, 너무 선동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신부는 사제관으로 가고, 수도자들은 수도원으로 가고, 신자들은 성당으로 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님의 이 말씀이 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

 이 말씀을 우리들의 뇌리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뼈에 새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