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 연중 제12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살아가면서 기쁜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지만, 때로는 슬픈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고, 오늘복음처럼 폭풍우에 요동치는 호수에서와 같은 어려운 일도 있다. 뜻하지 않은 삶의 광풍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런 광풍이 우리를 피해가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
인생이라는 항해에는 크고 작은 풍랑들이 끊임없이 불어온다. 때론 그 풍랑이 가정과 직장이라는 배를 파선시키기도 하고, 우리의 인생 항로를 전혀 예상치 못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강력한 고난이 되어 몰아치기도 한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중요한 시험에 실패하기도 한다. 중한 병에 걸리기도 하고, 잘 자라던 자녀들에게 어려움이 닥치기도 하고 그 아이들이 빗나가기도 한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자식이 먼저 죽는 슬픔을 당하기도 한다. 예측하지 못한 사건 사고의 시련도 있을 수 있다. 외부로부터 쏟아져 불어오는 돌풍도 있고 내부에서 울렁이는 돌풍도 있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사는 게 싫다. 빨리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날들이 있을 수도 있고, 살아가다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풍랑을 만나면 모든 관계가 다 깨지고 인생에서 ‘개털’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엔,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는 하지만 주무시고 계신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때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하느님은 계시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하느님은 인간의 부르짖음에 묵묵부답인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반대편으로 건너 가실 때에 큰 풍랑을 만났던 일을 증언한다. 폭풍우가 닥쳐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데도 예수께서는 마치 그 배 안에 없는 듯, 마치 부재하듯 당신의 제자들과 교회의 신자들을 내 버려두고 주무시고 계신다.
초대교회 때부터 교회를 드러내는 상징들 중에 가장 많이 쓰인 것이 배다. 배 안에 계시지만, 정작 아무 일도 안 하시는 것 같은 예수님 이야기는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 부재 체험, 현실 속에서의 하느님의 부재 체험을 이야기한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그분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교회는 2천년 동안이나 가르쳐 왔고, 그 교회에 몸담고 있는 모든 신자들에게 임마누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할 것을 요구해 왔지만, 임마누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조차도 때로는 현실이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두려움과 고통, 번민에 시달린다.
믿음이 만사형통의 길은 아니다. 믿는다고 해서, 내 앞의 미래가 고속도로 뚫리듯이 뻥뻥 뚫리고, 내 앞의 장애물들이 알아서 척척 사라지지도 않는다.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로또 복권을 구입하면 다 걸리는 것도 아니다. «고통의 바다를 헤쳐 가는 현세의 배 안에 함께 계시는 예수님, 저를 도와 주소서 »라고 울부짖어도 때로는 아무런 대답도 못 듣고, 그저 황망하게 하늘만 쳐다 볼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을 신앙을 가진 이들조차도 겪을 수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 자신의 능력의 한계와 지혜의 한계를 날마다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 그래서 언제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인간이 느끼는 하느님의 부재, 하느님은 나를 보고 계시겠지만, 침묵을 지키실 뿐, 손을 내밀지는 않으시는 것 같다는 이 부재, 이 부재에 대한 체험 앞에서 그래도 하느님 믿으라고 말하는 것은 떼쓰기를 넘어서서, 폭압처럼 다가 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시대만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장면은 이미 2천년 전, 초대 교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오늘 복음은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 신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시는 것처럼 여겨지고, 교회 안에서 부재하는 것처럼 보여질지라도 그분은 항상 살아 계시며, 이 세상을 평화로 이끄시고, 우리의 불안과 걱정을 없애 주시는 분이시라고 알려준다.
하느님이 계시지만, 너무나도 멀리 계셔서 나에게는 마치 계시지 않는 듯이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특히 환난이나 고통에 처해 있을 때에 하느님은 더욱 더 멀리 느껴지고, 영원히 침묵 속에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것 같고, 교회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나타나지 않는 듯이 보이는 신앙의 갈등 속을 헤매고 있을 때에도 나는 과연 신앙인으로서 제대로 살아 갈 수 있을까 ? 이 물음에 대한 답은 « 그렇다 »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부재에 대한 체험과 동시에 그 체험에서 겪게 되는 고통을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잠들어 있던 예수님을 제자들이 흔들어서라도 깨웠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부재에 대한 체험에서 겪는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하느님의 침묵과 그리스도의 부재 체험이 가져다 주는 신앙의 위기와 갈등의 때에 신앙인은 더욱 더 신앙인답게 살아야 한다. 하느님의 침묵은 나의 신앙 증거와 증언이 침묵 중이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부재 체험은 신앙인으로서 나의 삶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증언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통하여, 나와 함께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며, 내가 하느님을 증거할 때, 하느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참으로 복된 소식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 « 세상과 교회에 부재하는 듯이 보이는 하느님을 네 안에서 찾으라 ! 네 안에 잠들어 계신 구세주를 잠에서 깨워라. 네가 잠들어 있기 때문에, 너의 구세주께서 잠들어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 입을 열어 나의 복음을 증언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이 네 마음에 들리리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네 손을 내어 주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손을 내밀어 주리라. »
Ubi caritas est, Deus ibi est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신다고 했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깨달으라고 채근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