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by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posted Jun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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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한번 화해하고, 한번 용서하고 용서받으면, 그것으로 깨어진 관계가 다시 회복이 되고, 만사가 형통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용서와 화해는 한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 혹은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로 많이 알려진 예수님의 비유는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고, 화해와 용서의 장면을 상상하노라면,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다. 작은 아들을 시기하던 큰 아들이 자신의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는지, 작은 아들이 용서를 받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없다. 성경뿐만 아니라 ‘화해와 용서’라는 주제를 다룬 TV 드라마나 영화, 소설 같은 각종 미디어들의 공통점은‘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지면 대부분 끝이 난다는 점이다.

우리의 인생살이라는 것은 순간과 순간의 연속이다.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얼기설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해와 용서는 관계를 깨뜨린 사람들 간의 눈물 나는 꾸준한 노력으로 이루어지며,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지려면 상호간의 미움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분통과 억울함, 괴로움이라는 상처들이 아물기 위한 시간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원수에 대한 사랑, 곧 화해와 용서에 대해 말씀하신다 : « 여러분은 원수를 사랑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소.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오 ».

화해와 용서,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화해를 청하고, 용서를 청할 때에 결코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가짐이 있다. 상대방으로부터 « 용서한다 »는 말이 나올 때까지 화해와 용서를 청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만하면 됐겠지’, ‘이만큼이나 내가 양보하면 됐지, 얼마나 더 해야 하나’하는 마음, 바로 자기 잣대로 상대방을 넘겨짚는 마음이다. 마찬가지로 화해와 용서를 청하는 사람을 대하는 상대방도 결코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가짐이 있다. ‘내가 너를 용서해주나 봐라. 내가 당한 게 얼마인데’ 하면서 진심으로 청하는 화해와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상대방에게 화해를 청하고 용서를 청하는 것은 그 상대방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다시 만나 뵙는 일이다. 관계 안에서 서로서로 화해와 용서를 주고 받는 것은 각자 안에 현존하시는, 다시 관계 회복을 바라시는 성령을 만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에서 하느님을 만나 뵈올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서부터이다. « 내가 당신과 하느님에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 « 당신의 화해를 받아들이고, 당신을 용서합니다 ». 오늘 복음은 나에게 하느님을 만나 뵈옵는 길을 알려주긴 하지만, 그 길을 걸을지 말지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기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