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3일 목요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힘만 가질 수 있다면,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다면, 무얼 해도 좋다는 세상이다.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법도, 탈법도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필요악으로 작용해버리는 세상이다. 갑이 되기 위해, 그 어떤 것이라도 내어 바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 갑이 되려면, 오늘날에는 돈이 있어야 한다. 옛날에는 권력이 바로 힘의 상징이었다. 돈도 권력에 봉사했고, 권력의 시녀였다. 그러나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통용되는 나라들에서는 돈이 권력 위에 존재한다.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말에서 나온 « 권력은 짧고, 돈은 길다. »라는 말이 격언의 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 « 여러분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오. » 침묵하고, 무관심하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불의에 대한 우리의 침묵과 무관심이 결국 불의라는 어두움의 세상을 만들었음을 시인하고, 더 이상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과 불의를 고발하고 폭로하며, 의로움의 길을 걸으려는 실천이야말로 바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우리의 의로움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철저한 율법 준수 덕분에 문자상으로는 의로웠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 시대 당시 사회의 부조리에, 사회의 불의에, 관료들의 썩어빠진 삶의 양식들에 대해 묵과하거나 눈도 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의 지도자들의 불의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던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방법이란, 그들이 하지 않았던 의로움의 실천, 곧, 사회의 악에 대한 고발과 시정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사회참여를 동반한다고 가르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