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12주일 강론)

 

세파를 극복하는 믿음

 

갈릴래아 호수는 바다라고 불릴 만큼 폭과 깊이가 대단합니다. 실제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민물 호수인데 바다처럼 파도가 칩니다.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 이야기입니다.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마르 4,37) 배가 침몰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이 위기 속에서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배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주님을 깨우며 다들 죽게 되었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그리고나서 주님의 기적이 이어집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풍랑을 잠재우시는 주님의 놀라운 능력이 아닙니다.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배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제자들의 나약함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바다에서 갑자기 뜻하지 않은 거친 풍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고 의지하던 배우자가 갑자기 사별하게 되었을 때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되었을 때

-자녀가 중병에 걸리거나 먼저 하늘나라로 갔을 때

-이혼의 아픔을 겪을 때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을 원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열심히 믿고 착하게 살았는데 왜 이런 불행이 닥치는가?’

하느님 열심히 믿고, 봉사도 열심히 하는데 왜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닥치는가?’

하느님 믿어 봐도 별 소용없네. 아니지. 하느님은 처음부터 안 계셨던 거야.’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 삶에 닥칠 수 있는 그런 고통과 시련, 그리고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알아서 다 없애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이란 본디 불완전한 존재이고 세상도 불완전한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서 시련과 고통이 닥치는 것은 불가피한 인간의 현실이자 숙명입니다. 문제는 그런 시련과 고통을 겪을 때 거기에 그냥 굴복하고 사는가 아니면 믿음을 가지고 극복하고 사는가입니다. 인생의 태도에 따라 어떤 이들은 불행 속에서도 희망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고, 어떤 이들은 무사안일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시련과 고통이 기적적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인내 속에서 하느님께서 나로 하여금 시련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비유하자면 우산 없이 빗속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비가 저절로 그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고 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까지는 가는 힘을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참된 기도를 소개합니다.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시고,

위험에 처해서도

겁내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시고

고통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근심스런 공포에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시고,

자유를 싸워 얻을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나이다.

 

도와주소서.

 

일취월장하는 성공 속에서만

하느님께서 자비하다고 생각지 말게 하시고,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내 손을

힘껏 쥐고 계시다는 믿음으로 늘 감사하게 하소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불행과 시련이 닥치면 믿음이 부족하고 나약하여 쉽게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이때 사탄은 가까이 와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래, 이것을 이겨낼 힘이 나에게 원래 없어. 이거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봐. 그래,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으니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야.’ 여기에 우리가 속으면 안 됩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무력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립 4,13) 코린토 후서 1116절 이하를 꼭 읽어 보십시오. 사도 바오로는 온갖 박해와 시련 속에서 더 강해집니다. 또 우리는 쓸모없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1코린 6,20) 주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당신 생명과 우리를 맞바꾸셨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귀한 존재입니다. 또 우리는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아닙니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이사 43,4) 우리는 하느님에게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수까지 다 세워 놓으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지금의 시련과 고통이 당장 나를 집어삼킬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비가 온다고 해서 비구름 위에 태양이 없는 것이 아니듯이 지금의 시련과 고통이 크다고 해서 하느님의 축복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도 우리를 키우십니다. 중요한 것은 악에서도 선으로 이끄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련 중에 있는 나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선하게 이끄시는 하느님 아버지!

폭풍이 이는 바다 위에서 도움을 청하던 제자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던 것처럼

세상의 거친 비바람 어려움 가운데 있는

저를 돌보소서.

 

또한 제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주님께 의탁함으로써 승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은총을 풍성히 베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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