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코복음 4,35-41
하느님께서 주무십니다.
삶의 폭풍우 속에서 하느님이 안계시는 듯한 뼈아픈 느낌, 그래서 울부짖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38)
'하느님께는 우리의 고통이,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가 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에서,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옥같은 고통속에서 오늘도 이렇게 울부짖고 있는지 모릅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39)
이렇게 곧바로 응답하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성경 속에서 바다는 신비롭고 위험이 도사리는 자리, 파괴하는 힘을 가지는 세상 그래서 악의 힘이 발휘되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 바다를 잠재우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든 것은 하느님 손 안에 있다고, 그분의 한말씀만으로 상황은 뒤집힐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시다고 느껴질 때에 믿음으로 바라기란 쉽지 않습니다.
시편에도 나오듯이 그분의 부재를, 철저히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깨어나소서, 주님, 어찌하여 주무십니까? 잠을 깨소서, 저희를 영영 버리지 마소서!" (시편 44, 24)
"주님,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지 마시고ᆢ" (시편 27, 8-9)
그런데 잊지 말아야할 것은 예수님조차도 그런 순간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철저히 버려짐을 느끼며 부르짖으셨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절망의 부르짖음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하느님을 '저의 하느님'이라 부르십니다.
예수님 뒤를 이어 수많은 신앙인들이 절망 속에서 여전히 하느님을 희망하며 절망을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십자가에 참여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고통의 바다가 소용돌이 칩니다. 폭풍우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뱃머리에서 주무십니다.
하느님께 안계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는거지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니 그분 사랑을 믿고 그분을 향해 있으라 하십니다.
모든 부정적인 절망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믿고 부르짖는 신앙을 가지라고 독려합니다. 이 신앙은 날마다 기도로 키워내어야 폭풍우 속에서도 그분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콜로 1, 24)라고 고배하는 신앙이 우리들에게도 자리하기를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