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일 (나해, 2024년 6월 16일) 강론
‘메타세콰이아(Metasequoia)’라는 나무가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은 4백년을 넘게 살며, 높이는 80미터, 둘레는 30미터, 무게는 1300톤이 넘는 나무도 있다고 합니다. 느림의 도시라는 전라도 담양에는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의 씨앗은 무척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다지요.
매년 봄이 되면 다양한 나무에서 형형색색의 꽃과 어린 연두색의 새순이 터져 나오고 가을이 되면 달콤한 열매가 맺힙니다. 자연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힘이 느껴집니다. 오늘 복음에는 겨자씨의 비유가 나오는데 이 비유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겨자씨는 작지만 큰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삶 속에서 이웃에게 건네는 미소, 작은 선행, 작은 관심, 작은 용서 같은 평범한 요인들이 점점 자라나 하느님 나라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작은 겨자씨같이 시작되는 것처럼, 작은 무관심, 작은 거짓말, 미움, 시기, 질투 같은 것들도 점점 자라나 지옥 같은 혼탁한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수천억 개 은하들을 비롯한 엄청난 우주가 존재하고, 작은 씨앗 하나가 거대한 나무로 변하며, 봄이면 팝콘이 피어난 것과 같은 이팝나무나 벚꽃이 터져 나옵니다. 또한 옹알이를 하던 아기가 건장한 청년이 되고,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회색빛 노인의 뺨에 눈물이 흐르는 것은 모두 하느님의 힘과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셋째, 세상만사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겨자씨 하나가 갑자기 큰 나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선택받은 이가 갑자기 공중부양(종말을 예언하던 다미안 선교회의 1992년 휴거)을 하거나 무슨 로또복권 당첨되듯이 단박에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꽃이 피는 과정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국은 활짝 피듯이 하느님 나라도 천천히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이룩되는 것입니다.
작은 겨자씨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대하는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흘려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마디’라도 붙잡으면 그 성경구절이 내 안에서 뿌리를 내립니다. 어느 날 문득 ‘좋은 일’을 하고 싶고 기도가 가까이 느껴지게 됩니다. 말씀 한마디가 우리의 몸에서 ‘프로그램 작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도 ‘그 자체’가 능력입니다. 숱한 병자들을 고치셨고, 악한 기운을 몰아내셨습니다. 풍랑을 잠재우셨고, 죽은 사람까지 살리셨습니다. 모두 한마디 ‘말씀’으로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씨앗을 우리 ‘마음 밭’에 심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도 ‘땅’입니다. 수많은 조직체들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땅’입니다. 그 안에는 살과 피와 뼈와 엄청난 세포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남아 있는 미지의 땅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동안 연구된 의학기술도 인체의 신비에 대해 10%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몸 구석구석에 주님의 ‘말씀’이 닿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끔은 신앙생활을 돌아봐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기도한다면 정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건성으로 모시는 성체라면 감사의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성당 안에서까지 분심이나 세상 걱정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다고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작은 정성이 ‘삶 전체’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점과 관련하여 폴란드 출신의 화가 헤리 리버맨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점과 관련하여 폴란드 출신의 화가 헤리 리버맨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는 1905년 29세 때 단돈 6달러를 가지고 가난했던 폴란드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평생 장사로 돈을 모았지요. 그리고 77세에 은퇴하여 여유 있고 조용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노인 클럽에 나가 한가로이 체스 상대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봉사원이 그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체스 상대가 오시지 않는 것 같군요. 거기 그냥 앉아 계시지 마시고 화실에 가셔서 그림을 한번 그려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리버맨이 당황하며 말했지요. “내 나이가 올해 77세요. 그런데 어떻게 그림을 그린단 말이오?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붓 한번 잡아본 일이 없다오.”
“뭐, 어떻습니까? 무료하실 텐데 한번 가보시는 것도 좋지 않겠어요?”
그 후 그는 10주간 그림지도를 받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나이 팔십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오늘날 여러 미술관의 벽에 걸려있을 뿐 아니라, 그림 수집가들이 계속해서 그의 그림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미술평론가들은 리버맨을 가리켜 ‘원시적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이라고 극찬하고 있지요.
그 후 그는 10주간 그림지도를 받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나이 팔십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오늘날 여러 미술관의 벽에 걸려있을 뿐 아니라, 그림 수집가들이 계속해서 그의 그림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미술평론가들은 리버맨을 가리켜 ‘원시적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이라고 극찬하고 있지요.
만약 리버맨이 현실의 편안함에 그냥 안주했다면 그러한 극찬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아니 자기 자신에게 숨어 있는 재능을 발견할 수는 있었을까요?
형제자매 여러분, 이처럼 하느님 나라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일상 속에서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살아간다면 이미 하느님 나라는 내 곁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