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신앙도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얻게 되는 빛나는 이름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는 그 이름이 선생님일 수도, 친구, 또는 남편과 아내일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사제라는 이름은 제 인생을 통해 가장 빛나는 이름입니다. 이러한 이름들이 단순히 우연히 주어지거나, 생물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를 낳는다고 곧바로 어머니요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가르쳤다고 선생님이라고, 결혼했다고 곧바로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빛나는 이름들은 관계 안에서 그리고 과정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름입니다. 아기를 가지지 않더라도 인생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칠판 앞에 서지 않더라도 우리 인생의 선생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기를 낳는 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포기하면서 되어가는 이름입니다. 친구와 부부는 친구 맺는 그 순간에 또는 결혼하는 그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상대방을 배려하고 희생하고 자기를 포기하는 딱 그만큼 친구가 되어가고 부부가 되어갑니다. 사제와 수도자 역시 서품과 축성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자신의 서약에 충실하는 만큼, 하느님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만큼 되어가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인생은, 또한 인간은 이렇게 되어가는 존재이고, 형성의 과정 중에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삶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도 그렇습니다. 신앙은 어느 한 순간에, 어느 한 결정적인 순간에 이루어지고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하느님을 향해 서 있는 그만큼 되어가는 존재가 바로 신앙인입니다. 모세가 사람을 죽이고 이집트 왕궁을 빠져나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에게는 40년이라는 광야의 생활이 필요했고, 가나안 땅으로 가기까지 또 다른 40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바오로로 예수님을 만나고 사도로 활동하기까지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13년을 회개의 생활을 했습니다. 신앙 역시 인생 전체를 통해서 성숙해가고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는 땅에 뿌려질 때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 작지만, 자라나면 어떤 풀보다 커져서 새들이 그 그늘에서 쉴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 나라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무언가가 아니라, 나의 매일 매일의 삶 안에서 나의 헌신과 포기 속에서 이루어져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헌신하고 포기하는 그 만큼 부모가 되어가고, 부부가 되어가고, 사제와 수도자가 되어가듯 하느님 나라는 나의 일상 안에서 나의 헌신과 포기를 통해서 내 안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렇게 과정 속에 있습니다. 신앙 역시 서서히 성장해가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와 같다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 또는 신앙은 인간의 눈에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으며 하찮은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일상 안에서 우리 마음 안에서 작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고, 쉽게 지나지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것 안에서 하느님이 살아 계심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신앙인 되어갑니다. 보잘 것 없고 하찮은 그것들을 위해서 나의 헌신과 포기를 바칠 수 있을 때,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각자 안에서 큰 나무로 성장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과 인생이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점점 자라나 큰 나무가 되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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