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훈화)
피정을 마치고
피정은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 속에 하느님이 계시고, 동시에 내면 속에 참된 ‘나’가 있습니다. 일에 치이고 정신없이 목표를 향해 치닫던 시간 안에서는 만날 수 없는 두 존재를 고독 속에서 더 분명히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정보 통신 수단이 워낙 발달하다 보니 호기심 많은 존재로서의 우리는 자신을 혼자 가만히 있게끔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 틈을 이용해 인터넷과 휴대폰이 늘 우리 곁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교회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적 성장은 수많은 이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선택함으로써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이라면 혼자 있는 시간은 그 자체로 중요한 시간입니다. 가끔은 자신의 독방이나 성전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참 좋을듯합니다.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라 내적으로 충만한 시간이고,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피정에서 자연과 벗하여 창조주 하느님을 관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조물주는 6일 동안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다음 날은 쉬셨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그다음 날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무엇인가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니 좋다’ 하셨으니 사랑의 눈빛으로 당신의 작품들을 감상하시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천지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렇게 보고 계실 것입니다. 저 또한 그 느낌으로 대자연을 바라보았습니다. 높고 푸른 하늘과 청록의 나무들, 그리고 이름 모르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꽃들, 하늘을 날아다니며 고운 자태와 목소리로 노래하는 새들, 계곡을 타고 시원하게 흐르는 물들, 맑고 청량한 산 공기와 강렬하지만 살가운 햇빛. 그리고 피정의 집 지킴이답게 누구에게나 다정하게 접근하고 착한 눈을 가진 강아지들. 모든 게 제 눈에는 평화롭고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광경이 바람에 스치우면서 어디선가 나지막히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아이야, 나는 너를 내가 만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사랑하단다.” 6월 예수성심성월이 깊어 갑니다.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아이야, 나는 너를 이 우주만물보다도 더 사랑하기에 내 몸과 피를 내어 준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