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11주일 강론)
겨자씨 자라 큰 나무 되듯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겨자씨 비유는 당시 일반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 이야기였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요즘 어린이들에게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지 물으면 정확히 모릅니다. 본적도 키워본 적도 없으니까요. 겨자는 다년생 풀로써 그 씨가 좁쌀보다 작은 대략 0.2mm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기에 자라기 시작하면 놀랍게도 2~3M까지 폭풍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도 깃들일수 있을 만큼 큰 나무된다는 성가 가사가 나온 것이지요. 아무튼 겨자씨는 뿌리기만 하면 농사의 수고 없이 저절로 크게 자랍니다. 또 비슷하게 제1독서의 말씀도 향백 나무 꼭대기 순을 따라 심었더니 그것이 자라면서 많은 열매를 맺고 온갖 짐승들에게 그들을 제공하는 큰 나무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겨자씨와 향백 나무 순을 크게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창대함의 시작은 미미한 인간의 협력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아주 작은 일,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미미한 선행 하나, 작은 희생 하나, 작은 봉사 하나, 작은 기도 하나, 거기에서부터 자라기 시작한다는 것이 그 핵심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씨를 뿌리지 않으면 또 순을 심지 않으면 하느님은 그것을 키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통 우리들은 ‘작고 미미한 일들’에 대하여 별로 가치를 두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그거 하나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 혼자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겠어?’ 예를 들면 지금 교구에서 주관하고 있는 ‘6R’ 운동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일회용 쓰지 않고 에너지 절약한다고 탄소중립이 이뤄지겠어?’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최근 교황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량적 관점에서 볼 때는 당장 대단히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사회 깊숙한 곳에서 작동하는 중요한 변화의 과정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합니다.”(71항) 나의 작은 실천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식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그것이 연대하고 집결하면 사회 시스템의 변화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들은 씨앗을 뿌리려고 하지 않고 열매만 달라고 청할 때가 있습니다. “씨앗”에 집중하십시오. 우리가 하느님께 평화를 달라고 할 때 하느님께서는 평화가 아니라 평화의 씨앗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씨앗은 용서와 이해입니다. 그 어떠한 씨앗이라도 땅에 떨어져 썩어 죽어야지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평화라는 열매가 맺기 위해서는 용서와 이해의 씨가 땅에 떨어져 썩어 죽어야만 합니다. 또 우리가 하느님께 사랑을 달라고 할 때 하느님께서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씨앗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씨앗은 배려와 희생입니다. 이 또한 자신을 죽이는 과정에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습니다. 확대하면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9가지 열매도 다 같은 원리입니다. 씨를 일단 뿌리고 그 씨가 죽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이 대목에서 박노해 가스팔 형제의 ‘꽃피는 말’이라는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꽃 피는 말
우리 시대에 가장 암울한 말이 있다면
“남 하는 대로”, “나 하나 쯤이야”, “세상이 그런데”
우리 시대에 남은 희망의 말이 있다면
“나 하나만으로도”, “내가 있으므로”, “내가 먼저”
하느님께서 보실 때에는 작은 것이 큰 것이고, 약한 것이 강한 것입니다. 우리의 작고 보잘 것은 선행과 희생, 그리고 기도가 모아지고, 그것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닿는다면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마중물 삼아 엄청난 기적을 일으킬 것입니다.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이름 모를 작은 소년의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아닙니까? 하느님 나라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나, 하나만으로도, 내가 있으므로, 내가 먼저 건네는 희사가 기적을 일으키고 세상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이제 각자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내가 뿌려야 하는 겨자씨가 무엇인지 묵상해 보고, 생활 속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솔선수범하기를 다짐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