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일(나해, 2024년 6월 9일)강론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악령이 들리셨다는 소문과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모함하는 율법학자들을 올바로 가르치시며 또 나쁜 소문을 듣고 온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예수님의 참 가족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즉 제자직의 본질은 혈연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실행하는가에 있는 것이고 이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참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들을 악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시고, 치유로써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시는 갈라짐 없는 하느님 집안의 주인이시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그 가르침 대로 사는 사람도 바로 참된 의미의 가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반대하던 무리들은 예수님을 모함하고자 예수님께서 미쳤다느니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소문을 퍼뜨리자 이에 예수님의 친척들과 가족들도 어느 정도 동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쓰러지게 마련이고 한 집안도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는 법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진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도 마귀 같은 못된 인간들이 있어 얼토당토않은 허튼 수작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또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한 수법으로 상대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악을 악으로 갚을 수 없는 우리 신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가면서 신자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악의 세력들이 자기 잘못으로 걸려 스스로 넘어지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바로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우리들의 방법이 가장 현명한 태도가 될 것입니다. 때가 되면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도 합리적이고 분명하면서도 넓은 아량을 가진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사탄과 악한 인간들을 사랑으로 깨우쳐 이기신 승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패배를 당하지만 절대로 쉽사리 단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늘 복음에서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인생도 세상의 모든 악과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싸움에는 달콤하게 다가오는 탐욕에 대한 유혹에 맞서는 투쟁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당하는 다양한 고통들을 잘 참아내는 것도 포함될 것입니다.
이러한 투쟁과 인내의 여정이 성공적이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의 승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확신과 신뢰를 지니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천 년 전 주님께서 우리 인간이 범한 죄의 무거움에 짓눌리시며 극도의 고통을 감내하신 그 모습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즉,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사랑과 신앙을 위해 올바른 양심으로 살아가려 안간힘을 쓰다가도 한 때는 그만 맥이 빠져 땅바닥에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 극단적인 이기주의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교만한 자기 자신을 믿다가 나가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망과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과 단절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를 찾아 메고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며 용기를 내어 외치던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처럼 주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수백 번이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용기와 인내라는 두 덕목을 발판으로 삼아 사랑으로 힘을 내어 오직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구절이 떠오릅니다.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2 코린토 6장 8-10)
형제자매 여러분, 참된 그리스도인, 참된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기존의 고정관념을 넘어서 정말 자신을 사랑의 삶, 기쁨의 삶, 참된 삶에 투신하는 자세로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