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10주일 강론)
이 시대의 사탄
창세기 3장은 인류의 타락과 사탄의 저주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에덴동산에 뱀이 들어 옵니다. 뱀은 선악과로 하와를 유혹하고, 하와는 다시 아담을 유혹하여 교만과 불순종의 죄에 떨어지게 만듭니다. 죄의 결과로 첫 부부는 서로가 알몸임을 알아보게 되었고,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서로가 알몸임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결핍과 수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고, 그로 인해서 하느님께서 첫 부부에게 주신 사랑의 일치가 깨졌다는 말입니다. 이제 아담과 하와는 서로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합니다. 사랑하면 서로의 부족함도 부끄럽지 않게 여기고 서로 보듬지만, 미워하면 서로의 부족함이 책망과 분열의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저자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을 사탄이라고 지정하고 있습니다. 교활한 사탄은 항상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길 원하고, 그래서 인간이 죄에 떨어지기를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사탄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반면 사탄이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고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공동체의 봉사자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한계와 결함으로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 나쁜 감정으로 서로 반목할 수 있습니다. 본당 공동체 안에서 자주 경험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탄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알면서도 절대 상대에게 사과하지도 나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봉사한다면서도 서로를 미워하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나는 항상 피해자이고 상대는 항상 가해자입니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입니다. 결국 교회가 분열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세속의 죄인들은 사탄이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스스로 타락하여 멸망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다릅니다. 사탄은 우리 신앙인들이 서로 물어뜯고 공동체에서 나가 자빠지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등장과 활동을 그저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의를 추구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탄이 가장 발광하는 때는 우리가 하느님께 더 나아가기를 바랄 때입니다. 이제 사탄은 성경에 정통하다던 율법 학자의 입을 빌려 예수님을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마귀 축출 기적을 마귀의 소행이라고 말한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사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끼리 분열하여 자멸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말씀하셨고, 당신과 동반하시는 성령을 모독한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십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사탄이 어떻게 신앙인들에게 접근하고 방해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탄의 얼굴은 다양합니다. 사탄은 창세기 설화처럼 뱀의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탄은 율법학자, 즉 지식인, 종교인, 의인의 얼굴로 가장하고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선을 가장한 악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온갖 감언이설과 이단 교설로 우리를 속이고 가톨릭을 반대하는 사이비는 물론이고 서양의 세련된 통계학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현대판 무속신앙인 타로의 형태 등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들이 결국 추구하는 것은 물질이며 정해진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과 망상에 우리를 종속시킵니다. 이들은 결코 십자가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를 어리석다고 말하고 손해라고 비아냥거립니다. 또 사탄은 시대사조인 무신론적인 인문학과 철학으로 하느님을 부정하고, 오로지 인간의 이성과 힘으로 인간 실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극기야 질환과 노화로 인한 병고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안락사가 진정한 존엄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은 세상의 가치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가지고 세상 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사랑, 평화, 정의, 나눔, 절제, 희생, 용서, 인내 등입니다. 세속화될수록 입교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냉담자는 늘어만 갑니다. 물론 우리 공동체 내에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물질과 쾌락이 중심이기 때문에 신앙에 관심이 없거나 그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악의 세력이 계획하고 주도하는 죽음의 문화를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혼자 일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인간과 일합니다. 자신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최고로 여기는 그들에게 사탄은 자신의 영을 불어 넣습니다. 빛의 자녀들보다 세속의 자녀들이 더 영악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십자가를 거부하는 온갖 형태의 유혹은 모두 사탄의 소행입니다. 항상 구원받는 자는 소수입니다. 하지만 그 소수의 선의와 희생이 세상을 바꿀 것이고 악으로부터 승리를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선포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각자 자기 탈란트를 가지고 세상 안에서 빛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모든 피조물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지만 성령 안에서 맺는 사랑의 열매는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