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강론(나해, 2024년 6월 2일)
 
오늘 우리 교회는 전례력으로 지난 주 삼위일체 대축일에 이어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대축일을 지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체성사를 특별히 기념하고 그 신비를 묵상하는 축일을 뜻합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이 세상과 다른 이의 생명을 더 사랑하며 지키고 싶어 하셨던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나눔과 돌봄의 뜻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더라도 사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향하여 살아야 영원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지를 한 생애를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가치를 잊지 말라고 빵과 포도주의 형상을 통해 성체성사를 남겨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교회는 2천 년 이상을 매일 미사를 통해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제정해 주신 성체성사의 의미를 생각해봅시다.
육신의 올바른 양육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인간 생명의 또 하나 중요한 구성요소인 영혼에 대한 양식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육체가 해로운 음식을 먹거나 또 먹지 못하면 병에 걸리고 영양실조에 걸리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제대로 양육되어야 정상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바로 성체성사를 통해 다가오는 성체를 영함으로써 영적 양육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 성체와 성혈, 자신을 완전히 비워 자신의 마지막 살 한 점,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우리 인간을 위해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적극적인 희생의 삶을 사셨다는 사실이 바로 성체성사의 참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와 관련된 시 한편이 떠오릅니다.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김용석 시인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동시입니다. 
꽃잎도, 꿀도, 향기도 남김이 없이 다 나눠줬지만 정작 잃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꽃은 노래합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기뻐합니다. 꽃의 신비에 대한 이 노래가 성체성사의 신비를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아낌없이 내어줄 때 나는 성장하고, 풍성하게 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남기신 예수님의 선물, 성체의 신비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났다가 죽는 인간에게는 우리의 생물학적 생명 이외의 생명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생명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참 생명을 가르치시고, 직접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가끔 아주 경건하고 독실한 개신교 형제들 중에 가톨릭의 혼인 미사나 장례 미사에 참여하였다가 ‘신자 아닌 분들은 영성체를 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말을 들으며 깊은 슬픔을 느낀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개신교는 성체의 의미가 가톨릭과는 달리 하나의 상징으로만 보고 있기에 살아계신 완전한 예수님의 몸으로 믿는 가톨릭의 성체를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미사 예식 중에 집전자인 사제만이 개인적으로 바치는 기도들이 있습니다. 그중 예물준비 때에 사제는 포도주에 물을 한 방울 섞으며 ‘이 물과 술의 신비로 우리도 우리의 비천한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케 하소서!’라고 속으로 기원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이 순간이 미사 중에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하찮은 물질인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를 이룬다는 신앙 고백은 이렇게 우리 인간성도 하느님의 신성으로 변용(變容)될 수 있다는 희망뿐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이 온 세상과 우주로 나아가도록 이해의 지평을 열어줍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마더 데레사께서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입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마더 데레사는 성체를 하루에 두 번 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듣고 보니 하루에 미사를 두 번 참례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아침 미사 때 성체를 모시며 예수님과 만나고 그 후에는 하루 일을 하며, 즉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며 그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예수님을 두 번씩 만난다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소외당하고 죽어가는 이들과의 만남이 두 번째 영성체라고 이야기하시던 마더 데레사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오늘 성체성혈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체의 참된 의미, 즉 고통받는 이웃과의 나눔 안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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