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성체 성혈 대축일 강론)

 

세 가지 값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는데, 구약은 말 그대로 옛 계약이고 신약은 새 계약을 뜻합니다. 구약성경에만 287번이나 등장하는 히브리어로 베릿트, 즉 계약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약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이 서로 지켜야 하는 믿음의 서약입니다. 그래서 그 징표로 번제물로 바치는 짐승의 몸을 반으로 쪼개고 피를 받아내어 제단에 뿌립니다. 왜 피를 사용했을까요? 계약을 어기면 피를 본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피로써 맺어진 약속이니 계약을 어기면 파기한 쪽이 죽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쌍방 계약이지만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수도 없이 하느님을 배반하고 계약을 깨뜨립니다. 반면 하느님께서는 그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십니다. 따지고 보면 성경은 당신의 자녀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하느님과 인간의 쌍방 계약이 아니고 하느님의 일방적인 계약인 것입니다. 계약이라는 단어 안에는 인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절대 버리지 않는 하느님의 무모한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탈출기를 보면 모세가 십계명을 비롯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법규를 백성들에게 일러주고 계약의 피를 뿌리자 백성들은 이렇게 화답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응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함으로써 계약이 성사됩니다.

 

그리고 그 계약은 때가 차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됩니다. 오늘 복음이 최후의 만찬 대목인데요,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 당신의 피로 새로운 계약을 맺으십니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4)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아버지의 일방적인 계약입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죄를 짓고 하느님을 배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 모든 죄를 끌어안고 당신의 외아들을 속죄양으로 내어주신 것입니다. 2독서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과거에는 짐승의 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면, 이제는 예수님의 피를 통해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 때마다 주님의 피로 맺어진 계약을 기억합니다. 그 계약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계약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목숨을 바침으로써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6월이면 예수성심성월을 지내는데, 해당 성화를 보면 가시관에 둘러싸인 심장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눈부신 광채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의 차가워진 마음에 사랑의 불을 놓고, 죄로 혼탁해지고 어두워진 마음을 성화로 이끄는 사랑의 성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한 주님의 성심은 지금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물은 세례성사를, 피는 성체성사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죄를 씻고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고, 성체성사를 통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습니다. 미사는 바로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고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리고 미사를 드리는 사람은 새로운 계약을 맺는 희생제사에 참여하는 것이니 그 은총에 화답하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성실히 따를 수 있을까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적어도 해야 하는 3가지 값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밥값’, 둘째가 이름값’, 그리고 셋째가 나잇값입니다.

 

첫째, 밥값입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주님의 몸인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몸을 밥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사 때마다 성체를, 예수님께서 주시는 밥을 받아먹는데 밥값은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 이름값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밥을 받아먹는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126절을 보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를 신봉하고 추종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먹칠은 하지 않는 신자가 된다는 말이겠지요. 우리는 또 각자 세례명이 있습니다. 저마다 수호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사용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품행으로 외인들에게 비난받을 때 우리의 수호성인도 함께 욕을 먹습니다.

 

셋째, 나잇값입니다. 신자가 된 햇수만큼 그리고 살아온 그 햇수만큼, 인품이 더 아름다워지고, 그만큼 성품도 더 둥글둥글 원해지고, 먹은 나이만큼 많이 용서하고 이해하고 그래서 두루두루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게 잘 지내는 멋진 사람, 나잇값을 하면서 살아가는 신자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날을 기념하는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성체를 받아 모실 때 나는 예수님의 피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하느님의 자녀이다고 생각합시다. 따라서 우리는 참된 신앙 안에서 밥값, 이름값, 나잇값을 하며 사는 신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1 나해 연중 제23주일 강론: 에파타 주임신부1004 2024.09.09 11
60 나해 연중 제20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8.20 48
59 나해 연중 제19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8.13 32
58 나해 연중 제18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8.05 18
57 나해 연중 제17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28 21
56 나해 연중 제16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22 16
55 나해 연중 제14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07 23
54 나해 연중 제13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01 16
53 나해 연중 제12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24 30
52 나해 연중 제11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16 23
51 나해 연중 제10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09 25
» 나해 성체 성혈 대축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02 22
49 나해 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5.26 20
48 나해 성령 강림 대축일 주임신부1004 2024.05.19 20
47 나해 부활 제7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5.13 36
46 5월 성모성월 특강 주임신부1004 2024.05.08 39
45 나해 부활 제6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5.06 8
44 나해 부활 제5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4.29 13
43 나해 부활 제4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4.22 16
42 나해 부활 제3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4.14 17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