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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나해, 2024년 5월 26일)강론 
 
어느 사업가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당신께 천년이라는 시간은 대략 어느 정도의 시간입니까?” 하느님이 대답하십니다. “한 1분 정도.” “그렇다면 100억원의 돈은 어느 정도의 돈인가요?” “1원 정도나 될까?” 
하느님의 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업가는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그렇다면 제발 저에게 1원만 내려 주십시오.” 그러자 하느님께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셨습니다. “좋다. 1분만 기다리거라.” 이처럼 우리의 얄팍한 생각들로 하느님의 의도를 알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며, 또 그분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란 “하느님은 본체로는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으로 드러나시고, 세 위격과 한 본체이신 분이 하느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위격(persona)은 본래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맡았던 역할의 가면(Prosofon)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옛날 그리스에서는 한 명의 배우가 여러 개의 다른 가면을 쓰고 여러 역할을 맡아 공연했습니다. 그러므로 한 배우에게 여러 개의 가면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일체(substance)란 말은 하나의 본체, 하나의 본성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하나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럿이 서 있게 하는 바탕이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배우 한 사람이 무대 위에서 세 가지 다른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즉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서로 다른 세 가지의 위격으로 존재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초세기부터 이러한 삼위일체 교리를 믿지 않고 2위이신 예수님께서는 1위이신 창조주 성부님께 종속된다고 주장하는(종속론) 이단이 있었는가 하면, 예수님과 성령을 완전한 하느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피조물로 낮추어 보았던 이단들(아리우스 이단)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이나 말일성도교 즉 몰몬교에서는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음식을 먹을 때나 운동경기를 시작할 때 또 일상 속에서 기도를 바칠 때 십자성호를 긋는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첫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며 둘째,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상기함이고 셋째, 이 동작으로 우리가 천주교 신자임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분이시면서 세 위격이란 말을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삼위일체 신비라는 말을 사용하고 이해가 아니라 믿음이 따라야 합니다. 이제 한 분이라는 단일성과 세 위격이란 다양성을 사랑의 관계로 풀이해 보고자 합니다.
 
삼위일체의 ‘단일성’을 이해하고자 남녀 사이의 사랑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남남이었으나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알게 되면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 안에 머무르고, 사랑이 깊어지면서 서로 닮아 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남자와 여자는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몸을 이룹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단일성은 바로 이러한 사랑에 비추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너무나 사랑하여 완전한 일치의 공동체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삼위일체의 ‘다양성’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처음에는 어머니 배 속에서 하나가 된 상태로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조금씩 그 거리가 멀어집니다. 배 속에서 품속으로, 품속에서 집 안으로, 집 안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다른 지역으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부모와 자식은 처음에는 온전히 한 몸이었다가 사랑이 성숙되면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삼위의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신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랑에 비추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신다는 면에서 우리는 서로 다름, 곧 ‘다양성 속의 일치’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삼위일체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남녀의 사랑처럼 서로 다른 위격이 온전히 하나가 된 것이며, 부모와 자식의 사랑처럼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 주는 사랑이 곧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러한 삼위일체의 신비, 곧 사랑의 신비를 살아가도록 초대받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이 신비를 믿고 고백한다는 참 의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이 받으려고만 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어주는 참사랑의 삶을 통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다짐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사랑 그 자체이신 성 삼위의 모범을 따라 서로를 인정해 주며 하나되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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