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사랑하다 헤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헤어짐이 배반 혹은 배신 때문이라면, 다시 사랑하기가 참 힘들다. 자기를 버리고 떠나가 버렸다가 나이 들어 힘 빠지고, 사정이 예전만 못해 다시 돌아오려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그런데, 참 묘하다. 다시는 꼴도 보지 않겠다고 모질고 독하게 마음 먹고서도, 세월이란 놈은 참 무섭다. 원망과 저주를 퍼부을 만큼 퍼붓고 나면, 사랑하고 또 미워했던 만큼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떠나갔던 그 사람도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아진다. 그가 나에게 만족하지 못했던 이유들도 생각나고, 마치 폭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 해변에 떠밀려온 부유물처럼, 내가 그 사람을 다 채워주지 못했던 모자람도, 나의 부족함도 떠오른다.
‘그래도 그렇지, 그 인간이 그러면 안되지...’ 하면서도, ‘그래, 어쩌겠나? 이게 다 사람 사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것만 같던 마음도 아주 천천히 열리게 된다. 미움과 저주, 원망과 분노로는 지금의 이 상황의 어느 것 하나도 바꾸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이 모질고 독한 세상을 살며 상처 하나 안 남기고 사는 사람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서 또 살아간다. 아프지만 또 믿고, 고통스럽지만 또 사랑하고, 억울하지만 또 안아주며, 결국 또 그러고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지난至難한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에 널브러져 있는 참으로 많은 슬픔과 고통과 눈물, 자기 몸뚱아리 안에도 새겨져 있는 그 많은 슬픔과 고통과 눈물을 잊어 버리려 잠시 온몸을 뒤틀어 대며 몸부림을 치다가도,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를 접으려고 하고, 외면하려고 하다가,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한숨 한번 내쉬면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살아가는 것 같다. 마치 그런 것들로 한 가득한 것이 원래 인생이려니 하면서 말이다.
어떤 이들은 그 슬픔과 그 고통과 그 눈물을 만들어 내는 세상의 악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심지어 그런 악으로부터 콩고물이라도, 팥고물이라도 얻어 먹을 요량으로 자발적으로 착 달라 붙으려 하고, 자발적으로 복종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입으로는 «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의 죄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나 없애시고, 저희에게는 자비나 베풀어 달라고 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인생이라는 게 원래 슬프고, 고통스럽고, 눈물 바다인 것이 아니다. 인생을 그렇게 슬프고, 고통스럽고, 눈물 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세상, 그런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확답을 들으려고 했던 사랑이다.
그런데, 우리 사는 세상의 현실은 어떠한가? 힘 없는 사람,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에게는 가혹한 정의를, 힘 있고, 돈 많은 사람에게는 부드러운 사랑을 펼쳐내려는 작태가 참으로 원망스럽기까지 한 현실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빵 하나 훔친 장 발 장(Jean val Jean)에게는 19년의 감옥살이가, 수십억, 수백억, 수천억을 해쳐 먹은 자들에게는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들먹이며 특별사면이 준비되어 있는 현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미움과 저주, 원망과 분노의 시간, 분명히 필요하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만, ‘너는 나에게 모질게 굴었지만, 나는 너에게 그러지 않겠다. 그러나 너의 모짐은 분명 잘못된 것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모질었던 너의 지난날을 그저 덮어 두고, 그저 잊어버리는 것이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한다’는 자각이 생겨나고, 그 자각이 바로 정의를 향한 타는 목마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현실 앞에서 멈칫거리고, 주저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교회, 참으로 베드로를 많이 닮은 교회에 오늘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신다. « 교회여, 당신들은 나를 사랑합니까 ? », « 교회여, 당신들은 나를 사랑합니까 ? », « 교회여, 당신들은 나를 사랑합니까 ? ».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 그렇다면,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어린양들을 돌보시오.» « 내 양들을 돌보시오 », « 내 양들을 돌보시오 ». 오늘 복음은 나에게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 양들을 돌보아야 할 이들이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