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30호 2017.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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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성민 신부 |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얻지만, 이웃을 사랑하고 보살피시라는 말씀에는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상처도 쉽게 받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이런 제 모습이 이기적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듭니다.
홍성민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parvus@hanmail.net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고 변화를 위한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이 모든 것은 죄책감보다는 우선 하느님께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죄책감이 드는 것은 자신을 하느님의 사랑을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에서 제외했기 때문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이기에, 나도 그들을 그렇게 대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도 정말 사랑하십니다. 그러기에 내 어려움과 내 상처를 무시하신 채로 밀어붙이듯이 사랑과 봉사를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내가 어려움은 피하고, 그저 편한 길로만 살려고 한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삶의 도전으로 다가오고,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나약함과 힘겨움으로 인해 그 말씀을 따르기가 버겁고 힘이 드는 상태라면, 하느님께서는 넘어진 아이를 안아 일으키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우리의 상처를 먼저 살펴주시고, 함께 아파해주실 것입니다.
죄책감이 앞서면 하느님 앞에 서기가 두려워지고, 그 두려움은 하느님에게서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죄책감도, 그것을 통해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부족함을 안아주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면, 오히려 하느님을 더욱더 가까이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