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이야기
2024.05.18 19:51

바오로 서간 - 20강. 필레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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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필레몬서

<학습목표>

1. 수신자

2. 집필 배경

3. 바오로와 사회제도

필레몬서

1). 옥중서간(에페소서, 콜로새서, 필리피서)

2). 필레몬이 속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읽도록 쓴 공적인 편지

3). 바오로 친서 : 그의 언어와 문체, 잘 마음이 표현됨

4). 바오로 서간 중 가장 짧음

5). 노예, 종에 대한 바오로의 신학적 견해 나타남

바오로와 필레몬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온 바오로의 서간들 가운데에서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이 가장 짧다.

그렇다고 용무만 간략히 적어 보낸 쪽지는 아니다.

 필레몬.jpg

<필레몬>

노예출신의 주교 오네시모스.jpg

<노에출신의 주교 오네시모스>
 

비록 짧기는 하지만 당시의 서한 서식을 전부 갖춘 어엿한 서간이다.

이러한 필레몬서는 또한 가장 개인적인 내용을 담은 서간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사신’(私信)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1]. 수신자

필레몬

1). 교회 책임자로 그의 집은 가정교회

2). ‘오네시모는 그의 노예

3). 콜로새 교회의 지도자로 추정

4). 바오로의 인고로 복음을 받아들임

5). ‘사랑하는 우리의 협력자’(필레 1)

필레몬 개인만이 아니라 그의 집에 모이는 교회도 이 서간의 수신인이다(2).

이러한 까닭은,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는 개인적인 일도 더 이상 사사로운 일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서간은 줄곧, 바오로 사도가 표현해 내는 섬세한 감정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왔다.

다른 어떠한 곳에서도 사도는 이처럼 자기의 권위가 제자들에게 중압감을 주지 않도록 애쓴 적이 없다. 그는 부탁하고 제안할 뿐 의무로 부과하지 않는다.

바오로가 이 서간을 언제 어디에서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오로가 쓴 것으로 전해지는 다른 서간들과의 관계 때문에 복잡하기까지 하다.

예컨대, 언뜻 보기에 이 서간은 콜로새서와 같은 시기에 쓰인 것처럼 여겨진다.

두 서간에서 다 바오로는 감옥 생활을 하고(콜로 4,3.10.18; 필레 9.10.13.18) 같은 동료들이 곁에서 그를 돌본다(콜로 4,7-14; 필레 23-24).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콜로새서는 바오로가 직접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적지 않은 반면에(콜로새서 입문’ 4 참조),

필레몬서의 친저성은 별로 문제시되지 않는다.

이 서간에서는 바로 바오로의 언어와 문체, 그리고 그의 마음을 접하게 된다.

서간의 발송지로는 에페소와 카이사리아와 로마가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떠오른다.

2]. 집필배경

필레몬의 노예 오네시모스가 도망쳐

바오로 사도의 옥바라지를 하며 그리스도인이 됨

바오로는 오네시모스를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며

편지를 써서 보냄

필레 1, 16-17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

집필 시기는 에페소일 경우에는 55년경, 카이사리아일 경우에는 58-60년경, 로마일 경우에는 61-63년경이 된다.

이 서간의 수신인인 필레몬은 달리 알려져 있지 않다.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그는 콜로새 공동체의 주요 인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공동체는 그의 덕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5-7절 참조). 사도 자신이 은근하게 밝히는 것처럼, 필레몬은 바오로의 인도로 복음을 받아들였다(19). 그리고 바오로는 이러한 필레몬을 사랑하는 우리의 협력자”(1)라고 부를 정도로 높이 평가한다.

이 서간의 집필 배경도 그렇게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바오로가 이 서간에서 내비치는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하면, 그런대로 상당히 개연성 있는 사실을 추측해 낼 수 있다.

필레몬의 노예인 오네시모스는 아마도 어떤 부정을 저지른 끝에(18), 주인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의도적이었는지 우연히 그리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네시모스는 바오로를 만나 그를 따르게 되고 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게 된다(10).

바오로 자신도 오네시모스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를 자기의 협력자로 삼는다.

충실하고 사랑받는 형제 오네시모스”(콜로 4,9)라는 콜로새서의 표현이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바오로는 이 오네시모스를 자기 곁에 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네시모스를 둘러싼 상황이 위험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점점 뚜렷해진다.

주인에게서 동의를 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통지도 하지 않고서, 도망 중인 노예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받아들여 곁에서 살게 하는 바오로를 보면서, 오네시모스 자신부터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의 법에 따르면, 바오로는 도망자를 은닉함으로써 개인 재산권 침해라는 중대한 범죄의 공범이 된다.

그리고 오네시모스는 자기에게 엄한 벌을 내릴 수 있는 주인에게 강제로 송환되기도 전에 붙잡혀 투옥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바오로가 오네시모스를 주인에게 돌려보내기로 작정한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바오로는 오네시모스를 그냥 보내지 않는다. 필레몬에게 서간을 써 보내면서, 자기 노예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16), 바오로 자신을 맞아들이듯이 오네시모스를 맞아들여 달라고 부탁한다(17).

그러면서 명확한 어조로 오네시모스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필레몬이 자기가 말한 것 이상으로 해 주리라고 의심하지 않는다(21).

이상’(以上)이 무엇인지는 필레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아무튼 바오로는, 오네시모스가 노예 신분을 벗어나 자유인이 되든 되지 못하든 주인에게 돌아가서 복음을 위하여 봉사하리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3]. 바오로와 사회제도

노예 문제에 대한 바오로의 생각

노예제도 자체에 대한 거론보다 그리스도 안의 형제애에 차원으로 접근
  
: 인간 사이의 평등과 사회적 신분의 초월

갈라 3,26-28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법적인 명령에 의해서가 아님 사랑의 덕행을 권고

복음은 믿음과 사랑으로 인한 내 자신의 변화가 불의한 사회제도와 희생자들에

대한 구체적, 실천적 결론을 이끌어 내도록 인도한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노예 제도가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초대 교회에서, 필레몬서에서만큼은 이 제도에 대한 그리스도적 자세의 일면을 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경전으로 수용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가설은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렇다고 이 간략한 서간이 곧바로 복음의 관점에서 본 노예 제도에 관한 논문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바오로는 이 서간을 쓰면서, 구체적이고 특수한 한 경우만 고려한다.

그러나 바로 이 특수한 경우가 문제였기 때문에, 필레몬서가 많은 교리를 담고 있는 다른 서간들보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말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오로가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접근하는 여러 서간의 구절들이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조심스러운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1코린 7,20-24; 에페 6,5-9; 콜로 3,224,1). 한편, 이러한 구절들을 읽은 고대 세계의 노예들은 틀림없이 자기들의 인간적 존엄성이 그야말로 충격적으로 확인됨을 보았을 것이다.

바오로는 노예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분리의 벽이 허물어졌다고, 더 이상 종도 자유인도 없다.”(갈라 3,28)고 과감히 단언한다.

주인도 있고 노예도 있는 로마의 신자들에게 그는 권고한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로마 12,10).

그는 이렇게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 집단 특히 전례 모임에서는 모든 이가 동등하며 서로 형제임을 확언한다. 그러면서도 외적이고 법적인 차원 곧 일반 사회생활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결론도 끌어내지 않는 것 같다.

바오로는 하느님 앞사람들 앞 확연히 구분한다.

그래서 더러 바오로가 인간 세계를 둘로 나누는 일종의 이원론(二元論)을 제시한다고 주장하기도한다.

그러나 필레몬서에 따르면, 엄격한 이원론적 해석이 가능하지 않다.

사실 바오로는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노예 제도를 직접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노예는 노예로 남아 있어야 하고, 자기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위치나 신분이 마치 하늘에서부터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인 양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바오로는 결코 두 가지를 그냥 나란히 배열하지 않는다.

곧 한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형제애와 일치가 강조되고, 다른 쪽에서는 주인-노예 관계가 신앙과 관계없이 기정사실로 전제되는 것이 아니다.

앞의 것이 뒤의 것을 이를테면 사로잡아 그것을 깨뜨리고 다른 차원에서 완성시킨다. 이제 오네시모스는 동등한 인간으로, 교회의 또 다른 구성원으로 여겨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필레몬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 온전한 형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렇듯 필레몬서를 비롯하여 신약 성경 전체가 현대적 의미의 사회 제도 개혁을 혁명적으로 부르짖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기존의 사회 질서를 옹호하는 보수론을 펴는 것도 아니다.

당시에 노예 제도는 누구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당연시하는 비인간적 제도의 희생자인 노예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강요하지는 않는다(8-9절과 14). 다만 믿음과 사랑으로(5) 내 자신부터 변화하고, 또 그러한 변화가 불의한 사회 제도와 그 희생자와 관련하여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도록 인도한다.

신앙은 삶이며 내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

하느님의 선택과 그에 대한 응답을 깨닫는 것이다.

주님을 먼저 안 우리가 바오로처럼 사도처럼

복음의 기쁨을 전할 수 있는 사도가 되어야 한다.“

갈라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1테살 5,16-18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2008바오로 해 개막미사 강론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2008628일부터 2009629일까지 1년간을 성 바오로에게 바치는 바오로의 해로 선포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성대하게 바오로의 해를 정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우리들이 바오로 사도의 정신과 영성을 본받아 인류복음화에 더 많은 노력과 함께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교황님께서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신 바오로 사도처럼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노력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한 바오로 사도는 지금부터 2000여년전 소 아시아 타르수스(현재 터키 땅)에서 바리사이파 유다인으로 태어났습니다.

회심이 전에 바오로는 율법을 구원의 유일한 길로 여겨 율법 실천과 공부에 몰두했던 열심한 바리사이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율법을 비판한 예수님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율법과 성전 체제에 도전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 예수님은 저주받은 자이지 메시아일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힘과 권능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하느님께 받은 징벌로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다인들의 생각은 우리를 해방시켜 줄 메시아가 어떻게 치욕스런 십자가형을 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그리스도교회를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바오로는 다마스커스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하러 가던 도중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이는 빛 때문에 눈이 멀게 된 후에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한 십자가의 죽음이야말로 인류의 구원을 가져다 주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 모든 진리를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실제로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심을 했고 이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 차례에 걸쳐 광범위한 전도 여행을 했고, 그의 노력으로 그리스도교가 민족적, 지역적 종교가 아닌 인류 전체를 향한 세계 종교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부활의 삶을 철저히 살고 증거한 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흔히 초대교회 때부터 바오로는 칼, 베드로는 열쇠를 상징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은 마치 비수와 같아서 우리의 심장까지 꿰뚫는 날카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에서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소서 6,17)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 것 입니다라고 했습니다.(갈라티아 2,20) 이처럼 바오로는 회심 후 순교를 할 때까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체험을 실제로 살았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오로의 해가 교회 일치 차원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 사도를 통해 우리는 겸손하고 진실 된 마음으로 교회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완전한 일치와 화해를 추구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바오로의 해에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영성이 부족한 지금 시대에 바오로 사도의 순교자 영성을 통해 신자들의 영적인 갈증을 해소하고 삶의 기쁨과 의미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바오로의 해가 교회의 잔치에 머물지 않고 특히 우리사회의 생명과 진리, 그리고 기쁨과 희망이 넘치는 축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항상 그리스도인의 희망을(로마 5,5) 기반으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새로운 열정으로 미래로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늘 자신을 미래로 인도해 줄 희망의 말씀과 빛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느 때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자유와 생명, 형제애와 일치, 평화의 샘이었습니다.

특별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사회에 바오로 사도의 모범을 따라 일치와 공존과 화합에 그리스도교회가 큰 역할을 하기를 기원합니다.

자유와 사랑, 그리고 일치의 그리스도의 복음은 교회와 세상에 끊임없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십시오.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마태 28,20).


 

<한 걸음 한 걸음>

삶은 길과도 같다.

우리는 살아 있는 내내 언제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길을 걷는 사람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내가 걷는 것에 마음을 집중할 때

비로소 근심과 걱정, 목표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해방될 수 있다.

다른 생각 없이 앞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내 안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면서 자유로움을 느끼며

종국에는 자신의 내면의 길을 걷게 된다.

드디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고유한 나 자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변화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성경퀴즈>

1. 다음 중 필레몬서에 대한 설명과 거리가 먼 것은?

(1) 바오로 서간 중 가장 짧은 편지이다.

(2) 옥중서간이다.

(3) 필레몬 개인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이다.

(4) 형제애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다.

<힌트> 교재 285

2. 필레몬서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당시 사회의 문제는?

(1) 불륜 문제

(2) 이혼 문제

(3) 노예 문제

(4) 경제적 불균형

<힌트> 교재 285-286

3. 다음 중 오네시모스를 가리키는 바오로의 표현이 아닌 것은?

(1)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2) 나의 오른 팔과 같은 이

(3) 내 심장과 같은 그

(4)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쓸모 있는 사람

<힌트> 교재 288




출처 : 수원교구 사이버성경학교 강의록 / 수원교구 이승환(루카)신부님


  1. 2024년 5월 21일 성모의 밤

  2. 2024년 제1회 요셉회 요한회 친교의 날 (5월 12일 마리아 강당 교중미사 후)

  3. 2024년 순교자들의 모후 쁘레시디움 야외 행사 (5월 4일 경남 고성군 김종성 비오 형제님 농장)

  4. 2024년 한빛대학 봄소풍 행사 (5월10일 진목정성지 순교자 기념성당 & 보문단지)

  5. 2024년 변성수 필립보 신부님 영명축일 행사(4월 28일)

  6. 바오로 서간 - 20강. 필레몬서

  7. 바오로 서간 - 19강. 사목서간(티모테오1.2서 티토서)

  8. 바오로 서간 - 18강.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9. 바오로 서간 - 17강.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

  10. 바오로 서간 - 16강.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1. 바오로 서간 - 15강.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

  12. 바오로 서간 - 14강.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

  13. 바오로 서간 - 13강.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

  14. 바오로 서간 - 12강.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

  15. 바오로 서간- 11강.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

  16. 바오로 서간- 10강.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2.

  17. 바오로 서간 - 9강.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

  18. 바오로 서간 - 8강.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3.

  19. 바오로 서간 7강.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2.

  20. 2024년 교구 창세기, 탈출기 필사자 인증서 수여식(4월 14일 교중 미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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