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고별사2
들어가기 전에
예수님은 ‘나는 ~이다’, 곧 에고 에이미 형식으로 당신의 신원을 계시하신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6,35-41)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양들의 문이다.”(10,7-9)
“나는 착한 목자다.”(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참포도나무다.”(15,1)
7이란 숫자는 완성수, 충만함을 상징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표징도 7가지, 부활하신 예수님이 티베리아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 배 안에 타고 있던 제자들도 일곱. 주님의 기도도 7개의 청원(마태 6,9-13), 가상칠언(마르 15,34; 루카 23,34.43.46; 요한 19,26-27.28.30), 초대교회 칠부제, 요한묵시록 일곱 교회, 7성사.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5,1): 예수님은 ‘나는 ~이다’의 형식, 곧 ‘에고 에이미’의 형식으로 두 번째 고별사를 시작하신다. 구약성경에서 포도나무는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포도나무가 하느님께 반역하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예레 2,21; 이사 5,3-4) 마침내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새로운 포도나무로 대치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가리켜 참포도나무라 하신 것이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은 새 이스라엘이고, 그 나무의 가지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새 이스라엘의 구성원들이다.
한편 이 구절은 요한공동체가 겪고 있던 위기 상황과 직결된다. 약 85년경 얌니아 회의. 결정 사항 ①그리스도인에 대한 저주 기도문 ‘배교자들에게는 희망이 없게 되며 완악한 지배자들은 우리 시대에서 절멸되어지리로다. 나자렛 사람들과 이교자들은 곧 멸망할지어다. 그들은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의인들의 반열에도 들지 못하리라. 교만한 자들을 낮추시는 주님,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저주문 암송의 목적은 개종할 마음을 사전에 차단하고, 이미 개종했지만 여전히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을 색출하기 위함. ②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들을 유다교 회당에서 추방하고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체포하여 처형하는 것 ③회당에서 추방된 이들에게 물건을 팔아서는 안 되며 그 자녀들을 학교에 받아주어서도 안 된다는 것.
*가지치기와 가지 손질하기(15,2): 가지치기는 늦은 겨울과 초봄에 이뤄진다. 겨울에는 죽은 가지들을 잘라내고 초봄에는 시들대로 시들어 더 이상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들을 쳐낸다. 한편 가지 손질하기는 8월을 전후해서 어린 가지들을 쳐냄으로서 주요 가지들이 양분을 충분히 흡수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 준다. 열매를 맺지 못해 잘려나가는 가지는 6절이 보여주듯이 포도나무인 주님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 신자와 유다교 회당에서 추방될 것이 무서워 주님을 떠난 이들을 가리킨다.
*머물고 열매 맺기(15,4-5): 열매는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는 형제적 사랑, 회개에 합당한 열매(마태 3,8), 복음 선교의 결과로 주어지는 열매(요한 4,38),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로마 6,22),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라 5,22),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이르는 빛의 열매(에페 5,9),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는 의로움의 열매(필리 1,11),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히브 12,11;야고 3,18), 그리스도 예수님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히브 13,15).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머물다=그리스도 안에서=相互內住=하느님이 우리 안에 현존하심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15,9-12): 사랑한다면 상대의 뜻을 존중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기쁘게 실행한다. ‘내 기쁨’은 예수님께서 누리시는 초월적 기쁨이다. 그리스어 기쁨과 은총은 어근이 같다. 기쁨은 카라(χαρἀ)이고, 은총은 카리스(χαριζ)다. 은총은 공짜라는 뜻이다. 기쁨은 그분의 은총 안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된 우리의 당연한 반응이다. 쾌락은 감각에서 오고, 즐거움은 환경에서 오고, 기쁨은 주님에게서 온다. 우리의 인생살이가 괴로운 일들의 연속이지만,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면, 초월적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사도 바오로의 역경과 시련 속 기쁨.(2코린 11,22-33) 한편 예수님이 언급하신 ‘너희 기쁨’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누리는 친밀함의 기쁨을 가리킨다. 이 두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생명의 원천인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이는 사랑으로 불타는 그분의 성심 안에 머무는 것으로,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며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친구이신 예수님(15,13-15):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친구’로 불린 사람은 아브라함(2역대 20,7; 이사 41,8)과 모세뿐이다.(탈출 33,11)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영예롭게도 모두가 예수님의 친구들이다. 그분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다. 유다의 배신에도 예수님은 그를 친구라고 부르셨다.(마태 26,50) 가장 큰 사랑은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것. 당신의 수난을 암시. 1952년 한국 전쟁 중 해병대 상병 케이시와 로빈슨 이야기. 케이시 로빈슨 수사 신부 탄생.
*세 번째 고별사(16,4ㄴ-33)는 로마의 박해를 받는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고별사 안에 나오는 “근심”(16,6.20.22), ‘울다’(16,20), ‘애통해하다.’(16,20), 그리고 “고난”이라는 단어가 박해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동사들이 미래형이다. 로마의 박해가 곧 닥쳐올 것임을 알려준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16,7): 그분의 십자가 죽음이 없으면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승천하시지 않으면 성령도 우리에게 오시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을 향한 파라클레토스의 고발(16,8-11): 여기서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말한다.(3,18;3,36;8,24;9,41) 십계명을 어기거나 7죄종을 죄라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죄의 결과이고, 근원적인 죄는 참 진리이신 하느님을 잊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16,10) ☞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유다인들은 생각하고 십자가형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예수님은 죽음에 갇혀 있지 않고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결국 아버지께로 돌아갔음을 성령이 입증하는 것이다.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16,11) ☞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서라고 생각하지만, 심판받은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이 세상의 우두머리’, 즉 악마 또는 사탄이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지만, 예수님은 죽음으로써 인류의 죄를 모두 씻으시고 죽음의 세력인 사탄을 패배시켰다.
*성령의 역할(16,12-15): 진리이신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한 구원 효과를 제자들이 온전히 깨닫도록 해주시는 것, 박해는 물론 교회의 소소한 일들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해결책을 알려주신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나 기도할 때 성령께서 비추어 주시도록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16,16): 첫 번째 ‘보다’ 테오레오(θεωρἐω=육안으로 보다), 두 번째 ‘보다’ 호라오(ὁρἀω=직관하다) 따라서 의역하면 “조금 있다가 내가 죽게 되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두 눈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다가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나에 대해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자들의 근심이 기쁨으로(16,20-21):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기쁨을 비유. ‘죄의 핵심은 사람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하느님을 대신하려는 것이고, 구원의 핵심은 하느님이 사람의 죄를 지고 가시면서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다.’-성서학자 존 스토트
*그 기쁨을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이다.(16,22): 세상의 기쁨은 감각적인 것이고, 환경에 의해 죄지우지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그 부활의 생명을 받았기에, 또한 주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기에 누리는 영적 기쁨이다.
*고별사의 하이라이트(16,33): 예수님 안에 머물면 누리는 내적 평화, 세상의 고난을 극복하는 신앙 ☞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비로소 그 고통 안에서 쉴 수 있다. 고통을 인내하면 비록 그 고통스런 상황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우리 마음엔 평화가 자리하게 된다. 고난을 통한 믿음의 성장(필리 1,29; 사도 14,22; 시편 119장), 시냇물이 흐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돌을 치워보라. 그러면 시냇물은 아름다운 노래를 잃어버릴 것이다. 빙점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의 고백. ‘병들지 않고서는 드릴 수 없는 기도가 따로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기적이 따로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말씀이 따로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서는 가까이 갈 수 없는 성소가 따로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서는 우러러볼 수 없는 얼굴이 따로 있습니다. 오, 병들지 않고서는 나는 인간이 될 수조차 없습니다.’
*17장 고별기도
1.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17,1-8)
아빠, 아버지! 하느님을 직접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은유나 직유. 그러나 예수님만이 독창적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빠는 아버지의 아람어(세속언어). 히브리어(신성한 언어)는 아브.
2. 제자들을 위한 기도(17,9-19)
3. 미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17,20-26)
제자들의 일치와 성화, 그리고 세상과 악에서의 보호를 하느님 아버지께 중재기도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