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주님 승천 대축일 강론)

 

하늘과 창공

 

성심대 어떤 형제님이 저한테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고 하는데 그럼 왼편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오늘 복음뿐만 아니라 사도신경에도 나오는 이 대목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저도 어릴 때 참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풀렸습니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라는 신앙 고백은 좌우를 구분하는 공간 개념이 아닙니다. ‘오른편에 앉다는 표현은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누구이신가를 나타내 주는 신앙적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오른편에 앉으심은 예수님의 신원위치를 말해 줍니다. 고대 근동인의 생각에 따르면 임금님의 오른편 자리는 임금님의 전권을 행사하는 이를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오른편 자리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권을 행사하는 이를 위한 자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사도신경은 승천과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심을 그러한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승천과 오른편에 앉으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신적인 위엄과 전능의 권한을 가리키는 신앙적 표현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라는 신앙고백은 예수님께서 가지신 새로운 존재 양식을 의미합니다. , 삼위일체 안에서 성자께서 성부와 동등한 신적 권능을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질문의 답은 성부의 왼편 자체가 없기 때문에 거기에 앉아 계시는 분도 없습니다.

 

, 그렇다면 승천도 공간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겠지요. 많은 성화 화가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구름 위로 둥둥 떠오르는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물리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아마 예수님은 무한히 떠올라가서 대기권을 뚫고 창공 밖으로 나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승천하신 예수님은 아직도 우주 공간을 떠돌고 있거나 이름 모를 행성에 정착했겠죠. 어쩌면 대기권을 벗어났으니 호흡곤란으로 다시 돌아가셨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은 창공이나 우주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하느님이 계시는 신적 영역 혹은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시공을 초월하는 세계입니다. 어찌 하느님이 하늘에만 계시겠습니까? 하느님은 아니 계시는 곳이 없이 다 계십니다. 구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구름은 하느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사도행전의 승천 묘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셨고 그분과 같은 신적 권능의 자리로 오르셨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입니다. 이제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 시야에 보이지 않습니다. 육안으로 확인되는 분이라면 결국 시공의 세계에 그분을 속박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모든 시대에, 모든 세대에게 당신을 드러낼 수 없게 됩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 안에 한 번 오셨지만, 부활 후 승천하신 그분께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이제와 항상 영원히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늘 우리 곁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승천은 성령강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승천하심으로써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을 파견하심으로써 다시 교회 안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승천하신 하늘은 하느님의 신적 영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령께서 머무시는 우리의 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몸이 성령께서 기거하시는 성령의 궁전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그분의 현존은 이제 우리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행전에서는 스승의 승천을 보고 어안이 벙벙한 제자들에게 두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훈계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이 말씀은 더 이상 물리적인 창공에서 주님을 찾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하늘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이미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미사를 통하여, 성사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항상 옆에 계십니다. 그리고 갈릴래아 사람들, 즉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세상 모든 곳에 함께 계십니다. 어쩌면 주님의 재림은 두 천사의 말 그대로라면 사도시대에 이뤄졌어야 하겠지만, 재림이라는 말이 공심판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강림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미 사도들에게 재림하신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다음 주면 드디어 부활 시기의 마지막 날,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교회 탄생을 경축하면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되새겨 보는 날입니다. 오늘 그 전주인 주님 승천 대축일에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겠습니까? 보이지 않는다고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가치는 바로 주님이지요.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니 비록 보이지 않지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던 그분을 믿고 바라며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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