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의 1차 선교 여행
바오로의 2차 선교여행
11강.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
1. 집필동기
2. 지리적 배경
3. 사도행전을 통한 갈라티아 교회상황 이해
4. 수신인
5. 집필장소와 시기
1. 집필동기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계 그리스도교 선교사들 |
유다인처럼 할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유다교화 이단 사상을 퍼뜨림 ⇓ |
갈라티아 교회 ⇛ 유다교화 |
갈라티아 사람들에게 바오로 사도가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갈라티아 사람들이 바오로가 전한 복음 메시지와는 다른 가르침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1,6)하고 질타한다.
다른 가르침이란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이들의 가르침을 말한다.
바오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오로가 떠난 뒤에 다른 이들이 왔다. 이들은 아마 유다인으로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이다. 이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유다교의 율법을 지킬 것을 강조하면서 할례를 강요했고 적지 않은 갈라티아 신자들이 거기에 미혹했던 것이다. 이런 소식을 들은 바오로는 이들의 그릇된 주장을 논박하면서 갈라티아의 그리스도인들을 바로 잡고자 편지를 써 보낸 것이다.
갈라티아서에는 상당히 격한 어조가 곳곳에 보인다.'저주를 받아 마땅하다'(1,8.9)거나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3,1)
다른 한편, 바오로는 갈라티아서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이야기하면서 육에 따른 삶과 성령에 따른 삶을 대비시킨다. 이것은 갈라티아 신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서도 당시의 그릇된 이교도적 풍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자유를 빙자해 도덕적 방종에 빠져들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갈라티아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이런 도덕적 일탈 역시 바오로 사도가 서간을 쓰게 된 또 다른 집필동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
↮ |
유다교 |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완성된 하느님의 구원계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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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따른 삶 |
↮ |
육에 따른 삶 |
갈라티아 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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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쟁적 서간 - 바오로 사도의 사상과 감정, 열정적 성격 반영 - 신학적, 역사적 가치 : 사도의 연대기 (1,11-2,14) - 초대교회에 대한 중요한 자료 제공 - 로마서의 신학적 토대 |
2. 지리적 배경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오로는 여러 차례 소아시아의 갈라티아 지방을 횡단한다. 바오로 사도는 제1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이 로마의 속주 갈라티아 남쪽에 있는 여러 지역에 복음을 선포한다.
곧 피시디아, 리카오니아, 프리기아 등이다(사도 13,14─14,25). 그는 또 제2차와 제3차 선교 여행 중에 두 차례에 걸쳐 갈라티아 북부를 가로지른다(사도 16,6; 18,23).
카파도키아와 흑해 사이, 곧 안키라(현재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 갈라티아 북부는 당시 켈트족 출신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사실은 이 북부의 주민들만 말 그대로 ‘갈라티아인(人)’이라고 부를 수 있다.
3. 사도행전을 통한 갈라티아 지역 교회 상황 이해(사도행전을 바탕으로)
이민족들의 사도(사도 9,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유다교를 교리를 강요하는 사람들(사도 15,1)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15,1-15)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 합의 사항 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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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
1.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 2. 피,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 3. 불륜을 저지르지 말라 |
갈라티아서 |
1. 이민족은 유다교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 2. 열두사도는 유다인을 대상으로 선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민족 선교 3.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예루살렘 모교회를 위한 모금 운동을 |
1). 갈라티아 교회의 위기 상황
갈라티아서를 바로 이해하려면 바오로가 서간을 써 보내는 그 지역 교회의 역사적 상황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바오로가 서간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위기 상황은 어느 한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갓 태어난 교회가 성장하면서 맞게 되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위기에 처한 교회는 결정적 선택을 하게 된다.
다시한번 복음의 진리에 대한 충실성을 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충실성을 유지하고자, 교회는 그 역사의 매 시기마다 그러한 선택을 되풀이하게 된다.
2). 바오로가 복음 전파와 교회 성장에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는 사도행전이 잘 보여 준다.
그는 유다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파견된 이민족들의 사도이다(사도 9,15; 22,21; 26,17). 그러나 이러한 그의 사명 수행은 줄곧 유다교에 집착하는 이들의 반대에 부닥친다.
사도행전의 저자 루카는 이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사도 15,1).
그리스도교를 유다교의 틀 속에 집어넣으려는 이 유다계 신자들은, 다른 민족과 다른 종교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모세 율법의 굴레를 씌우려고 한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이들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다.
성령의 깨우침을 받은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유다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민족 사람들에게도 하느님께서 성령을 내려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사도 10,17; 15,7-11).
야고보 사도 역시 이민족들이 교회에 들어올 수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자기가 판단하기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실천적인 규정 몇 개는 이민족들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이 요구 사항들이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선포되기도 한다(사도 15,19-21.28).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오로는 여러 차례 소아시아의 갈라티아 지방을 횡단한다.
바오로 사도는 제1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이 로마의 속주 갈라티아 남쪽에 있는 여러 지역에 복음을 선포한다.
곧 피시디아, 리카오니아, 프리기아 등이다(사도 13,14─14,25).
그는 또 제2차와 제3차 선교 여행 중에 두 차례에 걸쳐 갈라티아 북부를 가로지른다(사도 16,6; 18,23).
카파도키아와 흑해 사이, 곧 안키라(현재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 갈라티아 북부는 당시 켈트족 출신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사실은 이 북부의 주민들만 말 그대로 ‘갈라티아인(人)’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상이 바오로가 갈라티아서에서 이야기하거나 상기시키는 사실들이 전개되는 역사적 틀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바오로는 이 서간에서 언급되는 사실들을 직접 겪은 사람인데, 그것들을 사도행전과는 다르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바오로의 증언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루카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는 식의 양자택일적인 대답은 별로 합당하지 않다. 바오로와 루카가 말하는 것들이 서로 어긋남은, 같은 사실을 서술하는 두 사람의 의도가 다른 데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이다.
바오로가 충실한 증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추구하는 목적과 관련된 것만 이야기한다.
루카는 자기가 직접 목격하지 않은 것들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확실한 자료들을 가지고 작업한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객관적인 연대기를 저술하는 것이 루카의 의도는 아니다.
그는 교회가 성장하면서 그 성장의 원동력으로 펼쳐지는 성령의 활동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저자는 출처도 다르고 시기도 다른 문헌들을 한데 묶어 한 가지 사건과 관련짓기도 한다. 예루살렘 사도 회의도 이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이로써 왜 이 사도 회의가 갈라 2,1-10과 사도 15장에서 각각 다르게 기술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사도행전을 이용하여, 갈라티아서가 말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더 자세히 알 수 있고 또 갈라티아 지방에서 일어난 위기도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서간을 쓴 시기는 그가 에페소에 비교적 길게 체류하던 때(아마도 56-57년의 겨울)의 끝 무렵, 그러니까 로마서를 집필하기 여섯 달 전이 된다. 이로써 이 두 서간의 내용이 비슷하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갈라티아의 신자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퍼뜨려 위기를 초래한 자들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소요를 일으켜 바오로 사도에게 단죄받는 이 사람들은, 이교에서 개종한 신자들에게 모세 율법의 준수(3,2-3; 4,21; 5,4), 특히 할례의 의무를 부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2,3-4; 5,2; 6,12). 사도행전에서 자주 언급되는 바와 같이, 이들은 유다교를 고집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위에서 인용한 대로 사도 15,1에 요약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사실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제기된다. 사실 바오로는 이 서간에서, 도덕적 방종으로 변질되는 자유를 조심하라고 촉구한다(5,13).
그래서 바오로가 사실은 두 부류의 적대자들을 상대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이 가설은, 해이해진 도덕을 지지하는 자들과 유다교 율법의 준수를 주장하는 자들을 똑같은 사람들로 보기는 어렵다고 믿는 학자들이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사도가 서로 상반된 교리를 주창하는 두 종류의 반대자들과 논쟁을 벌였다는 증거는 없다.
그에 따라 다른 가설이 제기된다. 유다교를 고집하는 이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사실은 율법을 종교 의식의 면만 강조하고 율법에서 요구하는 윤리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주장은 콜로새서에서 말하는(콜로 2,16-23) 것과 비슷한 종교적 혼합주의가 된다.
사실 갈라티아서와 콜로새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세상의 정령(精靈)들을 섬기는 신앙이다(갈라 4,3.9; 콜로 2,20). 게다가 바오로 자신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이러한 방향에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곧 적대자들이 신자들에게 할례 받을 것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개종하기 전에 따르던 신앙으로 그들을 다시 이끌고 간다는 것이다(4,8-10).
바오로는 다른 한편으로, 할례 받은 이는 율법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 전체를 충실히 지킬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5,3. 그리고 3,10 참조). 바오로의 적대자들은 그와 반대로, 율법의 일부만 지켜도 된다고 주장하였음에 틀림없다. 사실 사도는 이 서간을 끝맺으면서, 적대자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할례를 강요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꾸짖는다(6,13).
이 가설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면에서 들어맞지는 않는다. 이러한 가설 없이도 이 서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도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도덕적 방종을 조심하라고 타이르는 것은, 그 지방의 지역 교회들이 잡다한 이교(異敎)에서 개종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이 그렇게 빨리 변화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가 있다.
그래서 바오로가 그들에게, 하느님의 자녀들이 갖는 자유가 어떠한 것인지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오로가 모세 율법의 관습과 이교의 관습을 똑같이 다룬다고 해서, 유다교를 고집하는 자들이 이 두 가지 서로 전혀 다른 관습을 혼합하였다고만은 볼 수 없다.
바오로가 그렇게 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그리스도께서 갈라티아 신자들을 이 두 가지 잘못된 관습 또는 신앙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그들이 계속 이것이든 저것이든 따른다는 것은 옛 종살이로 되돌아가는 꼴이 된다.
사도는 이러한 사실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다. 바오로는 차라리 이교의 제의(祭儀)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면 교회를 떠나게 되어, 복음을 왜곡시키면서까지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5,12).
4. 수신인
로마서 |
로마의 모든 신자들에게(로마 1,7) |
코린토 1서 |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에(1코린 1,2) |
코린토 2서 |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2코린 1,1) |
갈라티아서 |
갈라티아의 여러교회에(갈라 1,2) |
⇓ 갈라티아 북부의 그리스도인들 |
코린토서는 코린토 교회, 테살로니카서는 테살로니카 교회라고 서간의 수신인을 분명히 밝히지만 갈라티아서는 특정한 한 교회를 지칭하지 않고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1,2)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러 교회란 표현 때문에 갈라티아서의 수신처가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 같은 갈라티아 남부 도시들에 세워진 교회들이라는 주장이 한때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갈라티아서의 수신인은 남부 지역이 아니라 안키라를 포함하는 북부 갈라티아 사람들이라는 것이 전통적 견해였고, 오늘날에는 학자들 대부분이 이 견해를 따른다고 한다. 따라서 갈라티아서의 수신인은 바오로 사도가 2차 선교여행 때에 복음을 전하고 3차 선교여행 때도 방문한 갈라티아 북부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5. 집필장소와 시기
바오로 사도는 2차 선교여행과 3차 선교여행 때에 각각 갈라티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3차 선교여행 때는 갈라티아를 거쳐 에페소에서 약 3년간 체류하는데 이때에 갈라티아서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자들의 대체적 견해이다.
만약에 3차 선교여행이 끝나고 썼다면 집필 시기는 적어도 58년 이후이다.
그런데 58년쯤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서에 나오는 바오로 신학은 갈라티아서에 나오는 것에 비해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갈라티아서는 적어도 로마서보다 이전에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필 시기는 54-55년 또는 55-56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희망>
우리가 희망을 키우지 못하면 희망은 사라집니다.
우리 모두의 사명은 지독한 시련을 겪는 중에도
서로에게 희망을 나누며, 희망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결과가 이미 뻔히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담대히 모든 것에 희망을 품는 것이지 않을까요?
설령 그것이 당장 우리의 기대에는 어림도 없이
못 미치는 것일지라도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든 그저 잘 풀려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숭고함 안에서 완성됩니다.
<성경 퀴즈>
1. 다음 중 갈라티아 교회의 상황에 대해 바르게 설명한 것은?
(1) 믿음을 지키며 바오로를 걱정하고 있었다.
(2) 재림이 지연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3) 교회 안에 윤리문제와 송사문제로 불화를 겪고 있었다.
(4) 그리스도 신앙을 저버리고 유다교화된 이단에 빠져 있었다.
<힌트> 교재 145
2. 다음 중 바오로가 말한 교회의 세 기둥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1) 베드로
(2) 야고보
(3) 요한
(4) 마리아
<힌트> 갈라 2,9
3. ‘의화’는 율법을 실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1) ○
(2) ×
<힌트> 교재 151
출처 : 수원교구 사이버성경학교 강의록 / 수원교구 이승환(루카)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