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코 복음 16,15-20ㄴ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시며 예수님은 떠나가십니다.
바로 앞 구절들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거듭 믿지 못했다고 세 번(11.13.14)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1 독서에서도 제자들은 아직 옛 사고에 젖어 예수님은 늘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여전히 이 세상에 머물러 이스라엘 왕국의 재건을 기대합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사도1,6)
이렇게 부활의 증인이 될 자격이란 도무지 없다고 생각되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선포,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주시며 조건 없는 신뢰를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약함을 보시지 않고 늘 우리의 가능성을 보시며 우리 안에 머물 성령의 힘을 믿으십니다.
“... 승천하시어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19)
예수님의 승천, 하늘에 올라가심은 물리적인 공간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의 현존 방식의 변화를 얘기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존에서 보이지 않는 현존에로 옮아감이며,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니까
더 깊은 시선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사건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마르 16,20)
예수님의 승천으로 더는 눈으로 그분을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복음은 선포합니다. 그리고 위를 향해 가신 것이 아니라 마음속 내밀한 곳으로, 사물의 깊이 안으로 들어가신 것임을 시사합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 힘의 힘, 우리 빛의 빛이, 우리 평화의 평화가 존재합니다.
유한한 인간이지만 영원으로 연결되어 있고, 흙에서 온 육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또한 위로부터 태어나 하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만, 또 이 세상이 보여주는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활동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내 손을 통해 일하십니다.
내가 시원한 물 한잔이라도 기꺼이 내밀 때, 진실하고 생기있는 말을 건넬 때, 내가 정의에 목말라하고 사랑으로 나 자신을 잊을 줄 알 때, 또 내가 용서하며 평화를 이룰 때,
이는 우리가 ‘함께 계시는 예수님’과 손잡고 걷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예수님은 내 삶에 생기를 북돋아 주시고 꿈꾸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 삶을 충만케 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향해 우리가 깨어 산다면 다른 이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이 되는 기적이, 빛을 주는 빛이 되는 기적이, 배고픈 이에게 빵이 되어주고 낙담한 이를 일으키는 희망이 되고, 고통으로 마음이 타들어 가는 이들이 쉴 오아시스가 되는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강림을 기다리는 다음 한 주간 동안 다음의 말씀들을 되뇌어 보며 성령의 힘이 위에서 내리기를 간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
"모든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에페1,23)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마르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