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일 (나해, 2024년 5월 5일)강론
오늘은 교회전례력으로 부활 제6주일이면서 1922년부터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시행된 이후 102번째를 맞이하는 ‘어린이날’입니다. 최근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들에게 행복의 조건을 묻자 ‘화목한 가족’이 1위로 꼽혔다고 합니다. 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최저라는 이 땅에서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랄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5월을 성모성월로 제정하여 동정 마리아에게 특별한 공경을 드리고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가 하나의 종교로서 출발하는 데에는 몇 가지 큰 장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의 발달되고 세속화된 문화였으며, 둘째는 로마라는 강력한 이방인 세력이 가하는 박해였고, 셋째는 율법을 고집하는 유다이즘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율법을 고집하는 유대교 계통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유대전통을 준수하여 할례를 받아야 할 뿐만아니라 율법에 어긋나는 음식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즉, 당시로써는 신흥종교였던 그리스도교가 이스라엘 유대인의 전통과 문화 속에서 창설되었지만 율법적 유대전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종교로서 정착되어가는 데는 많은 시간과 장애들이 따랐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이 율법에서 오느냐?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오느냐?”라는 문제로서 그리스도교가 유다이즘을 극복하느냐 아니면 그 문화 속에 종속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회의를 소집했고 거기서 결정한 사항은, 새롭게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이들에겐 율법의 멍에를 더 이상 지우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교의 한 매듭이 정립이 되며 말썽이 많던 유대전통의 고수라는 걸림돌을 해결해 버립니다. 이제 구원이 율법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 결정을 하면서 ‘성령의 결정’이라고 선언합니다. 바로 이 사도회의가 최초의 공의회이며 사도들의 후계인 주교들의 결정은 ‘성령의 결정’으로서 오늘날까지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강조하시는 사랑은 ‘무엇을 하지마라’는 소극적인 사랑도 아니요,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같은 주종관계의 생물학적 사랑을 뛰어넘어 동등한 벗으로서, 이웃들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을 강조하십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고 하신 이 말씀은 개인주의와 집단이기주의로 만연한 이 시대에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2천 년 전의 예수께서는 실제로 그 사랑을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을 배신하고 도망치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할 사람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았고, 십자가에 매달려서도 아버지께 그들에 대한 용서를 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나도 사랑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가시관을 쓰고 살겠다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인도에서 빈민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성녀 마더데레사는(1910-1997) 197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영국의 한 방송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일생 동안 살아왔는데,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데레사 수녀는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일입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보살펴 주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 있는 몇 시간만이라도 그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것, 이것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모든 말씀의 핵심이요 정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으로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이 흘러나와 예수님을 거쳐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 사랑은 다시 우리를 거쳐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거저 받았습니다. 거저 받았기에 거저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명하신 사랑은 무슨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눈물의 씨앗’도 아니며 ‘향기로운 꽃보다 진한 그 무엇’도 아닙니다. 그 사랑은 서로를 내어줌으로써 생명을 더욱 풍성히 하고 기쁨과 평화를 만드는 사랑이기에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사랑을 미루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도 버려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실천해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사랑, 그렇기에 기회가 될 때마다 사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혜를 청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