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15,9-17
오늘 독서말씀으로 묵상을 시작합니다.
1독서(사도행10,25-27.34-35.44-48)
고르넬리오의 집에 베드로가 들어감으로 교회는 공식적으로 이방인을 향한 첫걸음을 떼게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저자인 루카는 앞서 서술했던 사도들 위에 오신 성령강림(2장)과 같은 모양으로 이방인들위에 오시는 성령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차별하지 않으시고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받아들이시는 것을 말해 줍니다.
혹 나에게는 차별하여 배척하는 이들이 있는지요? 차별, 분열은 악에서 오고 일치는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2독서(1요한 4,7-10)
요한의 편지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빛 속에서 걸어가는 것(1,5-2,29)
-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는 것(3,1-4,6)
- 세번째 테마(4,7-5,3)는 사랑과 믿음의 원천이신 하느님입니다.
오늘 단락은 여기에 속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고(9절) 그 아들을 속죄 제물이 되게 하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10)
이 사실에서 사랑의 계명이 생겨나고 사랑을 사는 힘을 얻습니다.
오늘 복음(요한 15,9-17)을 보면
9절:사랑이신 하느님에 대한 계시의 절정을 말합니다.
유일하고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아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똑같은 사랑으로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에서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봅니다. 바로 '이사랑 안에 머물러라' 하십니다.
이 사랑은 바로 우리가 영원히 머물 자리, 우리의 집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신원(정체)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랑 안에 머물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형제를 같은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같은 본질을 가지게됩니다.
10절:이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당신의 말씀을 간직할 뿐 아니라 당신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까닭은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11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시는 목적은 당신이 아버지와 나누는 사랑에서 오는 기쁨을 우리에게도 주시고 싶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사랑이 겉으로 드러나는 색깔입니다. 사랑은 기쁨을 발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