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나해, 2024년 4월 28일)강론>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누구의 돌봄이 없이 혼자 죽는 것이 가장 두려워.”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제껏 얼마나 많은 죽음을 목격했겠습니까? 주변에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서부터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안타까운 사고의 죽음까지 너무나 많은 죽음들을 보면서 사셨을 겁니다. 그래서 소위 고독사라고 불리는 ‘혼자 죽는 것이 가장 두렵다’라는 그 대답에 어떤 학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죽음’이 아닌 ‘혼자’가 두려운 것입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삶이 곧 죽음이라고 생각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두려움을 가져다주며 또한 실제로도 혼자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이 사회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점점 팽배해지면서 혼자만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며, 또 실제로 요즈음 젊은이들 가운데 혼밥, 혼술, 혼영, 등 혼자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아 보입니다. 이처럼 혼자되는 모습이 어쩌면 ‘죽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나’ 하나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셨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도 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요. 즉, 신앙인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모시고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면서 ‘죽음’의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나는 포도나무요로’ 시작되는 성가로서도 잘 알려진 요한복음의 포도나무와 그 가지에 대한 비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즉 포도나무의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라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비유는 무슨 의미를 주고 있을까요?
근본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첫째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줄 수 있을 만큼 포도나무로서 꽃이 피어야 한다는 것과 둘째로, 개화뿐만 아니라 많은 열매 즉, 결실을 맺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걸림돌도 방해할 수 없는 굳건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고 이 믿음을 바탕으로 사랑의 실천, 모범된 표양 등이 외적으로 드러나서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할 우리의 모습이 그렇지 못한 사례들도 많이 나타납니다. 한 예화를 들어 보겠습니다
40대 중반쯤 된 데레사 자매님은 친구들의 권유와 호기심에 이끌려 그들과 함께 역술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역술가는 자신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물어 사주를 보고, 얼굴 형상 등을 통해 관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운수가 좋다고 설명해주고는 다만 금년에는 특별히 자동차를 조심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 사주나 관상에 대해 별로 관심도 그리고 신뢰도 없었는데 ‘차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자주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가능한 자동차 여행을 떠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미 역술가의 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백화점에 가다가 길가에서 다른 차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다친 곳이 없고 자동차만 약간의 흠집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님은 몹시 당황했고 즉시 역술가의 말이 강하게 떠올랐다고 합니다. 운전하다 보면 더러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사건이지만 그 부인은 더욱 역술가의 말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재미나 호기심으로 점보는 것은 큰 죄는 아니지만 역술가가 하는 말이 내 마음에 자리하고 믿는 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신의 큰 문제점은 자유롭게 진리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 우리의 귀한 삶이 허황되고 잘못된 운명론이나 예정론에 묶여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자리 잡아야 할 우리의 마음 안에 잘못된 우상이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한국에서 많은 버스 의자 뒷면이나 신문에도 자주 볼 수 있는 역술에 대한 광고로 많은 이들이 역술가를 찾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 신입사원 면접에서도 면접관 뒤에 역술인을 몰래 두어 관상을 보게 하거나 사회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정치인들도 자신의 당락에 대해 적지 않은 이들이 점집을 찾는다고 합니다.
첨단과학 시대에 살면서도 사회 각 계층 사람들이 여기에 낭비하는 돈은 실로 엄청납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특히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의 앞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은 강한 충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 중에도 더러 이런 유혹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 사건을 갖고 20여명의 역술가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비슷하게라도 알아 맞춘 이들은 극소수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역술가들 중에는 의외로 전과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주 관상, 팔자보다는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려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하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실천과 모범된 표양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시는 우리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더욱 중요함을 생각합시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다양한 공동체에서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과 함께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신앙인들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