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부활 제5주일 강론)
포도나무 비유
캐나다 나이아가라는 폭포로 유명하지만 아이스와인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래서 포도밭도 많고 와인어리도 많습니다. 지중해성 기후에 잘 자라는 포도이지만 일찍이 캐나다에 정착한 유럽 이민자들이 자신들이 고향에서 마셔왔던 와인을 잊지 못해서 물이 풍부하고 볕이 좋으며 바람이 잘 통하는 나이아가라 대지에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유럽산 포도나무는 캐나다 추위를 못 견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캐나다 토종 포도나무 몸통에다가 자기 고향의 포도나무 가지를 접붙입니다. 와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열정이 대단한 것이지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포도나무 고랑과 고랑 사이에 잡초가 무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수분과 영양을 빼앗기게 잡초를 제거하지 않냐고 농부에게 물으니 그의 대답이 놀라웠습니다. 잡초는 포도나무의 경쟁자라는 것입니다. 잡초가 옆에서 견제해야만 포도나무는 안일해지지 않고 더욱 생존을 위해서 뿌리를 더 깊이 내린다는 것입니다. 지중해 연안의 포도 재배지와 달리 캐나다의 포도나무는 땅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만 겨울을 날 수 있고 건기에도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삶의 환경이 열악할수록 생활력이 강해지듯이 신앙도 세상의 풍파가 심할수록 심지가 더 굳어지는 법입니다. 살다 보면 여러 형태의 고통과 시련이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통하여 주님께 대한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나무의 비유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이신 농부는 더 많은 포도 열매를 위하여 불필요한 가지는 쳐 내고, 필요한 가지는 손질하여 살려둔다 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하느님의 생명을 더 충만히 누리기 위하여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거나 위험이 되는 요소들은 과감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고 유익한 것들은 더 키우고 채워야 할 것입니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 ‘머물러라’는 동사가 무려 8번이나 나옵니다. 복음 묵상의 키워드인데요, 머무르는 것은 주님의 현존과 말씀 안에서 충만히 잠기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머무르는 것은 주님의 영 안에서 숨 쉬고, 일하며, 휴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보통 신자들은 영성체와 성체조배를 할 때 눈에 보이는 성체의 형상 안에 실제 계시는 주님을 영적으로 느끼고 그 안에 머뭅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과 온전히 영적으로 하나가 되고, 그분의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머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말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입니다.
그러나 포도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는커녕 생명조차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식탁에서 멀어지는 것, 즉 말씀과 성체를 멀리하면 영적으로 우리는 고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합니다. 사실 주님과 온전히 일치된 상태에서 기도하면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7가지 청원 외에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성부와 온전히 일치된 상태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기도입니다. 그래서 가장 완벽한 기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신자들은 주님과 온전히 일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하게 되니 마치 하느님과 거래하듯이 기복적인 것들을 우선적으로 청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떤 의미에서 정말로 청해야 할 것은 더 많은 소유나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가 성령 안에 변화되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항상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붙어 있습니다. 이는 삶의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똑같은 컵에 물이 반이 담겨 있지만,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아 있다고 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물이 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또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지요. “인생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다. 하나는 기적 같은 것은 없다고 믿는 삶이요,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이다.” 신앙인들은 행복이든 불행이든 믿음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행여 나쁜 일이 있어도 불신자들처럼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하느님의 계획이 있다고 믿고 더 충실히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주님 안에 머물면 모든 청원 기도는 하느님 뜻 안에 있게 됩니다. 그러면 이미 다 이루어진 것이지요. 사실 우리가 청해야 할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 아니라 생명이신 하느님 그분 자체입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안에 머물 때 완전해집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며, 우리는 그 생명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께 받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야말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