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오신 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우셨다. 그때 예루살렘을 향하여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루카 19,44)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읽으며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주님께서는 분명 나에게도 가끔, 혹은 자주 찾아오셨을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찾아오셨는데 내가 알지 못했던 때는 언제였을까.
이른 새벽, 맑은 정신으로 눈을 뜨게 되면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것이라고 했다. 묵상하기 좋고 기도하기 좋은 고요한 시간, 이불 속에 누워서 쓸데없는 잡념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다면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다가 실망하며 가셨겠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 망설이다가 모른 척 지나쳤다면 주님께서 내 손이 필요해서 찾아오셨다가 슬퍼하며 돌아섰을지도 모른다. 기도가 필요한 사람을 무심함으로 지나쳤다면, 지하도 계단을 오르는데 소쿠리를 앞에 두고 얼굴이 땅에 닿도록 엎드린 저 사람, 그는 지폐 한 장이 절실하게 필요했을 것인데 귀찮아서 혹은 쑥스러워서 그냥 지나쳤다면...
이렇게 생활 속에서 문득문득 나를 찾아오셨겠지만 무시했을 수도 있고, 어리석고 부족해서, 혹은 둔하고 무뎌서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만약 내 삶을 하느님 저울에 달아본다면 주님 쪽으로 기울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어느 날 주님께서 “너의 날 위에 단 하루도 남아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내 영혼 상태를 수시로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그 시간은 아침기도, 저녁기도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순간순간 나를 들여다봐야 했다. 나도 모르게 교만, 위선, 이기심, 욕심, 편견, 판단,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내 영혼을 회개로써 구해야 했다.
이다음 죽어서 하느님 대전에 엎드렸을 때, 내가 정말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은 무엇일까. 신앙생할을 하면서 얼마나 변화된 삶을 살았는지, 개인적인 시간을 아껴서 얼마나 봉사했는지,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순간 기도로 간구했는지 물어보신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준비하면서 살아야겠다.
삶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 만만치 않은 모서리 속에서, 나를 지켜주시던 주님의 사랑은 위대하고 컸다. 또한 나를 아프게 하고, 남을 아프게 하던 모서리가 그분으로 인하여 조금씩 깎여서 둥글게 변화될 때 그것이 바로 주님을 기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님께서 찾아오신 때를 놓치지 않고 잘 영접하는 삶이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