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강론)

 

착한 목자

 

(어떤 보좌 신부 이야기)

 

착한 목자는 주님 한 분뿐이십니다. 나머지는 모두 그분의 양떼이지요. 사제도, 수도자도, 평신도도 모두 넓은 의미의 신자 그룹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저마다의 사도직과 카리스마, 즉 주님께 부여받은 은사가 다를 뿐이지 머릿돌이신 주님을 중심으로 모두 한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만 사목자는 유일한 착한 목자이신 주님으로부터 사목권을 위임받았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사도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신 다음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고 이르신 대목을 잘 아실 겁니다. 따라서 사목자의 본질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자들을 섬기고 잘 돌보는 것입니다.

 

또 사목자의 임무는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며, 우리 안에 들지 않는 양들도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사제로서 신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독신을 지키는 이유가 그저 정결만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재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교회에 투신하라는 것이지요. 만일 생각과 행동이, 다시 말해 모든 에너지와 시간, 그리고 정열을 오로지 신자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서 쏟지 않는다면 이기적인 독신자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신자들을 위해 미사와 기도를 드리고, 신자들이 영적으로 쇄신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신자들이 화합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사제의 직무입니다.

 

사제 생활 21년 차인 저로서 요즘 고민은 신자들 간의 화합입니다. 미사 참례자수도 늘고, 교무금과 봉헌금도 늘었지만, 또 특강과 성경공부 참석자도 타 본당에 비해 많아졌지만 그것이 사목의 척도가 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지요. 공동체는 개인 신심만을 추구하는 신자들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혹은 세속적인 의미의 커뮤니티도 아닙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친분으로 맺어진 사교 집단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들지 않는 양들이 있습니다. 비단 냉담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머물고 있지만 섞이지 못하고 외로워하는 양도 있고, 목자 가까이 있는 양들끼리 서로 물어뜯고 상대방을 염소 취급하는 양들도 있습니다. 사제는 우리 안에 들지 않는 양들도 데리고 와야 합니다. 회두를 권면하고 대립을 중재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성소라는 말은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사제는 사제로서, 수도자는 수도자로서, 평신도는 평신도로서 성소를 알아듣고 응답해야 합니다. 사제 성소와 수도자 성소가 급격하게 줄고 있지만, 심각한 것은 가정 성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이 인구 자체도 줄고 있지만 이제는 결혼도 못할 정도로 경제적 여건이 안 되거나 된다하더라도 비혼주의로 결혼하지 않으려는 독신자들이 많아 졌습니다. 또 결혼을 했다하더라도 금방 깨지고 갈라섭니다. 결혼이 개인 삶의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혼배성사도 받으려 하지 않는 조당자도 많지만 성사혼이든 관면혼이든 혼인성사를 개인의 선택으로 취급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신자들 간에도 혼배성사를 신성시 여기지 않는 풍조가 만연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를 떠나버린 양들을 되찾아 와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의 자녀들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착한 목자는 자기의 양들을 알고, 양들도 착한 목자를 안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서로 알아보는 것은 음성을 통해서입니다. 실제 양을 키워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주인이 목소리를 변조해도 양은 주인의 음성을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을 치는 사람들은 자기 양의 음성을 듣고 어떤 상태에 있는지 바로 안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활한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넘어가듯이 주님의 음성을 못 듣고 세상의 소리에 영혼을 빼앗기고 맙니다. 누구보다도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잘 아십니다. 사제도 양들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병이 들었는지, 어디가 다쳤는지, 배가 고픈지, 길을 잃어버렸는지 알아야 합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전포성당에 투신할 수 있도록 기도와 더불어 협력해 주십시오. 함께 일할 봉사자가 부족합니다. 젊음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을 찾아 볼 수 없는, 그리고 휘황찬란한 도심 속에 있지만 세상의 빛이 되어 주변을 복음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전포성당이 일어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1 나해 연중 제23주일 강론: 에파타 주임신부1004 2024.09.09 11
60 나해 연중 제20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8.20 48
59 나해 연중 제19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8.13 32
58 나해 연중 제18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8.05 18
57 나해 연중 제17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28 21
56 나해 연중 제16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22 16
55 나해 연중 제14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07 23
54 나해 연중 제13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01 16
53 나해 연중 제12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24 30
52 나해 연중 제11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16 23
51 나해 연중 제10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09 25
50 나해 성체 성혈 대축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02 22
49 나해 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5.26 20
48 나해 성령 강림 대축일 주임신부1004 2024.05.19 20
47 나해 부활 제7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5.13 36
46 5월 성모성월 특강 주임신부1004 2024.05.08 39
45 나해 부활 제6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5.06 8
44 나해 부활 제5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4.29 13
» 나해 부활 제4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4.22 16
42 나해 부활 제3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4.14 1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