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일(나해, 2024년 4월 14일) 강론>
언젠가 라디오에서 '내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선물은? 또는 최악의 선물은?'이라는 제목으로 청취자들과 전화 연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들으면서 생각해보았지요.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 또한 최악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를 말입니다. 많은 선물을 받았음에도 ‘이것이다.’라고 생각나는 것이 없더군요. 즉, 별다른 최고의 선물도 최악의 선물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청취자 중, 라디오 진행자가 어떤 중년의 형제님과의 전화 연결에서 뜻밖의 선물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선물은 바로 학창시절 때의 선생님이라는 것입니다.
학비가 없어서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상황에서 제자의 안타까운 형편을 아신 선생님께서 직접 이 학비를 내주시고 용기를 불러 일으켜주셨답니다. 이 형제님은 '제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라고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는 ‘너도 커서 남을 도우며 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사회복지사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살고 있답니다. 이렇게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끔 해주신 선생님이야말로 자기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물하면 어떤 물건을 떠올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어떤 물질적인 물건만이 최고의 선물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상대방이 보여주는 정성이나, 그 사람 자체가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인에게는 더 큰 최고의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부활체험을 동료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있을 때 주님의 발현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첫 반응은 무섭고 두려워하며 유령을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자들이 부활하시고 자신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대목에 주목해 보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내용은 오늘 복음뿐만 아니라 무덤 앞에서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여겼던 마리아 막달레나나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도 그들을 부르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정치적 현세적 메시아를 기대했던 그들이었기에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처형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큰 충격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꿈도 희망도 사라져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실망과 좌절로 이렇게 마음이 닫혀 있을 때 육신의 눈은 진실을 깨닫는데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 앞에 발현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유령으로 생각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항상 동행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오직 인간적 가치와 욕망에만 따라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한때 직장인 필독서 20권 중 앤서니 라빈스(Anthony Robbins)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라는 책에서 우리들 대부분이 ‘나이아가라 증후군’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인생이란 강물에 구체적이고 의식적인 결단 없이 마냥 떠밀려 가는 삶, 자신의 가치관이나 의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휘둘리면서 단지 집단의 일원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의식적인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물살이 빨라지고 요동치는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당도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체적, 감정적, 경제적 추락을 경험하고 그 결과 좌절에 빠지며 결국 자포자기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하더라도 상류에서 미리 결단을 내린다면 폭포 아래로 추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삶에서 제기되는 각종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무엇(what)을 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어떻게(how to) 해야 진정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인은 자신의 삶 안에 항상 주님께서 동행하시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다는 사실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는 진정 성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요즘에 우리는 아름다운 꽃이 피는 좋은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인 추운 겨울에도 이 꽃이 거리에 만발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점점 추워지면서 잎사귀가 떨어져 나갔고 그래서 수액이 완전히 빠져버린 메마르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나무에서 다시 꽃이 피리라는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만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면 꽃이 피리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보호와 은총 안에 있음을 확신하며 산다면 어렵고 힘든 상황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인이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 말미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뒤, 회개와 죄의 용서를 선포하라고 명하시며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손안에 있음이 가장 행복한 자리임을 세상에 알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주님을 만나고 뜨거움을 체험한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는 부활시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