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 성야미사 강론(나해, 2024년 3월 30일 토)>
주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주님 부활의 은총이 우리 토현 공동체 모든 교우님들에게 충만히 내리시고, 그 은총이 언제 어디서나 삶의 위로와 용기, 기쁨과 희망이 되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세상 구원을 위해 인간이 되신 하느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밤입니다. 이 밤은 하느님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이겨낸 부활이 한 목소리로 이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선포하는 은총의 밤입니다. 하느님의 죽음, 인간의 죽음, 그리고 부활…,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19세기에 있어서는 <신은 죽었다>라는 것이 문제였으나, 20세기에서는 <인간이 죽었다>라는 것이 문제다.” 근대에 와서 인본주의, 물질주의, 개인주의, 기계문명…. 인간은 자기들을 하느님을 뛰어넘는 초인(超人)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신을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철학자 니체 같은 사람들은 정말 ‘신은 죽었다’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신을 죽인 이후의 역사는 불행하게도 그들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을 인간 이상의 모습으로 꾸며내기 위해 부득불 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인간 자신의 죽음으로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인간이 과연 ‘하느님 보시기에 매우 좋은’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가 맞는 것인지 의심까지 하게 만들 정도로 자연과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고 있음을 경험합니다. 경제와 개발 그리고 영리라는 논리를 앞세워 소중한 목숨을 살상하거나,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는 자연과 생태계 세계마저도 아무 거리낌 없이 파괴하는 극단적인 이기심은 이제 너무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은 더 이상 더불어 살아야 할 동반자가 아니라, 자기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남을 이용하고 짓밟을 수 있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신이 죽어버린 이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들도 지금 자신들의 탐욕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께서 보여주신 죽음과 부활의 길,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가자고 부르시는 그분의 초대,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을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희망의 새로운 표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께서 보여주신 죽음과 부활의 길,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가자고 부르시는 그분의 초대,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을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희망의 새로운 표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이란 그저 멋진 하나의 추억에 불과한 사건이 결코 아닙니다. 부활이란 깨닫고 받아들이고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할 현재화된 사건입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암흑의 실체를 체험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나아가 부활을 통해 승리에 동참할 수 있는 은총까지 우리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실제로 우리 한국의 수많은 순교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조롱과 모욕과 배척을 당하며 처참하게 죽어갔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2014년 8월 16일 당시 박해를 명령했던 최고 권력자, 왕의 거처 앞에서(광화문) 100만 명이 넘는 신자들과 전 세계가 보는 가운데 124명을 복자로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반면 당시 박해를 했던 인물들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제 지나온 시간 속에서 우리 자신이 번민하며 괴로워했던 아픔의 시간들을 떠올려 봅니다.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불안했던 순간들도 되짚어 봅니다. 시기와 질투로 범벅된 자기 우월주의에 빠져 아집과 욕심으로 살아왔던 떠올리기조차 싫은 지난 시간들을 회상해 봅니다.
먹구름이 뒤덮어 태양 빛을 전혀 볼 수 없는 순간조차도 실상 구름 위에서는 강렬한 태양 빛이 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모르겠습니까마는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입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까? 과연 생명의 주님을 찾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살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죽음과 죽임의 문화를 과감히 끊어야 합니다. 때론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 생활하던 이집트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듯 회개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픈 유혹도 강하게 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회개하며 살아계신 주님,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 앞서 갈릴래아로 가신다고 합니다. 그곳은 예수님 선교 활동의 주 무대이자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즉, 부활은 무덤이나 다른 세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 이 시간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미운 사람이 안 보이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 미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곳이 천국이요, 그것이 정말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부활입니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아니하고 미래를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보이지 않으나 우리 곁에 함께 계시고, 만질 수 없으나 우리와 함께하심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신 사건이 주님의 부활입니다.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예수께서는 이제 더 이상 방황과 두려움도, 의구심과 좌절도, 실망도 용납지 않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부활은 한마디로 평화입니다. 곧 주님은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신 후 사람들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십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세상의 신음’을 이기는 평화입니다. 이제 이 거룩한 부활 성야 미사를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이 평화를 체험하고 이웃과 나누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다짐합시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