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일 전례는 일년중 가장 중요한 전례이므로 간추린 해설을 옮겨 적어봅니다.
부활 전례는 사건이 일어난 전날부터 수난, 죽음, 부활까지 삼일에 걸쳐 거행되지만 세번으로 나뉘어진 전례가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전례로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목요일 마지막 만찬 때에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당신의 수난, 죽음, 부활은 세세 대대로 재현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또 성체성사를 세우심으로 당신의 수난,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시면서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들에게 완전한 실패로 보이는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오히려 우리의 구원이 되도록 바꾸십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이루신 최고의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성삼일 전례에 참여하는 우리는 예수님의 정신으로 그 사건 안에 들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다른 복음사가들과는 달리 만찬 때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 발씻기신 예수님의 모습을 들려줌으로써 성체성사가 가지는 의미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삶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날 밤에 하는 성체조배는 자정에 마치도록 되어 있고 자정부터 시작되는 성금요일에는 온교회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침묵 속에 지내도록 권고합니다.
금요안 제1독서는 예수님의 수난의 예언으로 보는 이사야서의 야훼의 네째종의 노래를 들려주는데 이 종의 고통은 형제들을 도우기 위해 봉헌된 고통입니다.
제2독서는 예수님을 대사제로 보여주는 히브리서의 말씀이며 복음은 요한의 수난기를 읽습니다.
성지주일 수난기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복음을 돌아가며 읽게 되지만 성금요일에는 언제나 요한의 수난기를 읽습니다.
그 이유는 공관복음의 수난기는 역사적 사건을 서술한다면 요한은 이 사건 안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금요일의 전례는 예수님의 장례식을 거행하는 분위기가 되어서는 안되며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전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성토요일에 가지는 교회의 태도는 기다림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저승에 내려가신 것을 기억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완전히 돌아가셨음을 나타내고 인간의 현실(조건)을 저 밑바닥까지 체험하심을 보여줍니다.
성토요일에 우리가 가져야할 분위기를 잘 보여주시는 분은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은 고통중에서도 커다란 희망으로 지내셨고, 그래서 교회는 이날을 성모님께 바친 날로 지냅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성야인데 이날의 핵심은 미사성제이다.
예절은 네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곧, 빛의 예식, 말씀의 전례, 성세식과 갱신식, 성찬식입니다.
첫번째 예식으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드러내고 또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생명을 나타내는 표징이며,
말씀의 전례로 표징에서 예수님의 실재 현존으로 넘어갑니다.
그다음 성세식과 갱신식이 이어지는데 이 예절로써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은 사순시기와 성삼일의 모든 예절의 절정이며 이 순간 신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새생명으로 탄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주일은 기쁨으로 보내도록 명령된 날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능력에 있지 않고 우리에게 새 생명(새로운 삶)을 주시는 예수님의 은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성삼일 전례에 잘 참여하시고 새 생명의 은총 풍성히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