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을 허물고 일어나

가톨릭부산 2024.03.27 11:24 조회 수 : 6

호수 2806호 2024. 3. 31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무덤을 허물고 일어나
 

 
 
탁은수 베드로
언론인, 광안성당

 
   세례받은 지 50년이 다 돼가니 그만큼의 부활을 보냈을 겁니다. 어릴 땐 달걀주는 부활절이 명절 같아 좋았습니다. 한때는 부활 사건을 의심한 적도 있었습니다. 흰머리가 생길 때쯤에서야 십자가의 희생과 예수님 부활을 통해 우리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부활의 신비를 조금씩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기쁨을 간직한 주님의 백성으로 살기보다 세상일에 바쁜척하며 예수님 주변을 서성이는 ‘부활구경꾼’으로 살아온 시간이 훨씬 많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사순절을 맞이하며 신약성경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내 몸 가까이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말씀이 내게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쓴 날과 안 쓴 날의 차이가 확실했습니다. 성경을 쓴 날은 부딪히는 일들에 너그러워지고 만나는 사람들에 친절해진 나를 체험했습니다. 성경을 쓰면서 느끼는 차분한 행복이 혹시 성령이 머무시는 시간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분발하면 그동안 들어서만 알던 부활의 의미를 나의 일상 속에서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루카 24,5) 돌아가신 예수님을 찾는 여인들에게 천사가 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예수님은 살아있는 이들 가운데 계실 것 같습니다. 성체를 모실 때마다 나에게도 오십니다. 그런데도 왜 난 아직 부활한 예수님을 찾고 있을까요? 어쩌면 죄짓고 세상 욕심 부리느라 내게 오신 예수님을 뒤로 밀어내고 이기심, 불신, 무지 등의 돌과 흙으로 마음의 무덤을 쌓아 예수님을 가두어 둔 것은 아닌지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부활은 내가 쟁취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다만 무덤을 벗어나야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의 그리스어 어원은 ‘일으킴’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무덤에서 일어나 예수님과 소통하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부활 아닐까요? 거룩한 변모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느님 나라를 향해 조금씩 일상을 변화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던 신부님 강론이 기억납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는 이미 부활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성가대, 복사단, 전례부... 이런 분들의 노력으로 나는 참 편하게 부활 선물을 받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성당 청소에라도 참여해 봐야겠습니다. 아마 그곳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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