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방금 우리는 성주간을 알리는 수난 복음을 들었습니다. 복음서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수난기가 다 길다는 것입니다. 그 어떠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보다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십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수난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설교이자 거룩한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써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십니다. 즉, 하느님 사랑의 극치요 구원 경륜의 가장 위대한 업적을 당신 십자가로써 구현해 내십니다.
그러나 수난기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이 깊어지면 길수록 그를 향한 인간의 증오와 살기는 더 커져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반전은 수난기를 읽는 동안 계속됩니다. 환호하던 백성이 돌연 하루 만에 주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라는 성난 군중으로 바뀝니다. 참된 심판관이신 주님께서는 백성의 지도자들과 로마 총독에게 불의한 심판을 받습니다. 참된 임금이신 주님께서는 황금 월계관이 아니라 고통의 가시관을 받으며 조롱당합니다.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서는 생명을 잃으십니다. 창조주와 같으신 분이 피조물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빛이신 주님께서는 인간들의 어둠으로 인해 빛을 잃고 맙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주님께서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고 이제 침묵하십니다.
이렇게 영광의 메시아는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으로써 자신을 낮추십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는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또 제2독서 필리비서는 “종의 모습을 취하신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 합니다. 이 모든 말씀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암시하고 그 뜻을 풀이하는 해설이 되겠습니다.
이제 수난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정말 주님을 누가 죽였는가? 수난기에 등장하는 역사 속의 그들인가? 나는 지금도 주님을 죽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주님은 왜 그런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스스로 속죄양이 되어 죽기를 원하시는가? 그분이 말씀하신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고 하는 데 그 말씀은 무슨 뜻인가? 주님의 침묵은 나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가? 주님, 저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제가 당신을 죽게 만들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