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2024.03.17 15:20

사순 제 5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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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일(나해, 2024년 3월 17일)강론>

 
이제 봄의 기운도 완연해서 겨울잠을 자던 온갖 짐승들도 깨어나고 꽃과 나무 등 만물이 생장하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합니다. 아울러 우리 교회의 전례력으로도 이제 사순시기의 막바지에 이르렀으며 다음 주일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로서 예수께서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겪게 되시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성주간이 시작되는 날이 됩니다. 우리 교회 전례력에서 가장 중요한 때이죠.
 
저마다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 법입니다. 새가 나무가지에 잠시 앉았다가 날아간 뒤에는 그 나뭇가지가 한동안 흔들립니다. 연못에 돌을 던져도 파문이 일어납니다. 봄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든 꽃을 남기고, 가을이 지나간 자리에는 풍성한 열매를 남깁니다.
더구나 사람은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사라져도 반드시 자취를 남겨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가정, 직장, 동네, 사회에서 과연 어떤 자취를 남기고 갈 것인지요? 우리가 진정 남기고 갈 것은 재산도 아니요, 사회적 지위나 권력도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자식들에게만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그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토 까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엇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 갔음을 증명할까? 예술, 작품, 일, 업적, 지위?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 살아있었다는 증거는 누군가를 얼마나 진지하게, 헌신적으로 사랑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사랑은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하고 목숨까지 바쳐 전인적이고 인격적인 자기증여로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만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양쪽 모두에게 삶의 의미를 주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머지않아 세상과 인류 구원을 위해 기꺼이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 밀알이 될 것임을 암시하십니다. 또한 우리도 당신 모범을 따라 자기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라고 초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연어란 물고기는 매년 2월경에 산란을 하고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는 곧 죽는다고 합니다. 어린 새끼가 어미의 살을 먹고 자라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또한 어미는 새로 태어날 새끼를 위해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며 수천 킬로를 헤엄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두꺼비도 마찬가지로 새끼를 낳기 위해 뱀에게 먹혀 두꺼비에서 나오는 독으로 뱀도 죽고 자신도 죽어 죽은 뱀 안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며 새끼가 자란다고 합니다. 미물에게서조차 썩는 밀알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제서품식의 핵심에 후보자들이 바닥에 엎드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몸짓이지요.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위해 자신을 남김없이 내어놓는 꽃처럼 살겠다는 다짐의 표현입니다. 더 많은 결실을 위해 기꺼이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 밀알이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한 사제로서 이 세상에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겠다는 맹세입니다. 그 엎드린 모습은 교회 공동체 가장 밑바닥에 서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겠다는 공적 약속입니다. 아름답고 숭고한 모습이지요.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당신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 결과는 찬란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화려한 꽃으로 만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찬란함과 화려함 이면에 있는 예수님의 놀라운 자기 비움과 헌신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수난과 죽음 없이는 부활도 없고, 썩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도 없는데 말이죠.
우리 그리스도교는 다른 사이비 종교들이나 유사영성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목청 높여 외치는 달콤한 신앙을 우리 그리스도교는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그들이 강조하는 현세에서의 지속적인 축복과 성공, 한풀이와 무병장수를 그리스도교의 존재 이유로 삼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리스도교는 수난 중인 예수님의 얼굴과 그분의 십자가를 내세웁니다. 십자가를 통해 고통을 견디어 내고 십자가를 통해 희망을 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깊어가는 사순시기 우리 신앙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가 한 가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십자가를 없애주시려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와 함께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오셨습니다. 평생을 매고 가야 하는 십자가로 힘겨워하는 우리를 위해 당신 친히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우리 눈에서 눈물을 없애주러 오시기보다는 우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암울한 현실이나 끔직한 병고가 단번에 치유되지 않더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이 암담한 현실 안에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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