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사순 제5주일 강론)

 

산다는 것

 

어떤 신부님 책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삶의 신비는 우리의 육신이 죽기 전에 죽는 것이다. 곧 삶의 신비는 육신이 죽기 전에 자아가 죽는 것이다. 자아가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죽음이 없다.”

 

이 글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두고 하신 말씀에 대한 풀이입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 25)

 

, 자기 목숨을 사랑한다는 것은 육신 생명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육신 생명이란 생물학적 의미의 생명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 생명이란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건강, 재산, 명예, 권력, 쾌락 등에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탐욕과 이기심을 말합니다. 결국 그 열매는 교만, 분노, 분쟁, 거짓, 위선, 중상모략, 시기, 질투, 인색, 음란, 살의를 낳습니다. 이는 육신 생명이 끝나는 날 영원한 죽음과 파멸로 이끄는 악의 열매입니다. 반면 자기 목숨을 미워한다는 것은 그러한 탐욕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나누며 사랑하고 용서하는 모든 자기 비움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죽기 전에 죽어야 진정 산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육신이 죽기 전에 그릇된 자아를 죽여야지만 죽어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아 있을 때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승에서 자아를 죽이지 못하고 죽으면 저승에 가서도 죽은 자아의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승에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죽으면 저승에 가서도 용서하지 못한 상태로 이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또 이승에서 죄를 짓고 참회하지 않으면 저승에 가서도 그 영혼은 참회하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살아서 스스로 고립되고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은 사람 역시도 저승에 가서도 똑같은 상태에 머뭅니다. 어쩌면 살아서도 지옥의 상태에서 살았는데 죽어서도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제가 고해성사와 종부성사를 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살아서 뉘우치고 변화된 삶을 살아야지요. 이미 죽으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회개할 수 없고,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선행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이미 죽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고정된 상태로 넘어가고, 즉시 공정한 심판이 이뤄집니다. 연옥 가서 스스로 회개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연옥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지요. 혼자 구제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이미 계신 성인들과 살아 있는 우리들의 기도만이 하느님의 선하신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그 공로가 연옥 영혼에게까지 미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요한 12,24) 주님은 당신이 죽는 것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찌 죽는 것이 비참하고 허무한 것이 아니라 영광스럽다는 말일까요? 그 해답은 바로 이어지는 말씀에 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의인의 죽음이 많은 목숨을 살리는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속죄양이 되신 주님의 희생 공로가 세상을 구원했다는 교리상의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말로 주님의 희생적인 삶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귀감이 되고 연쇄 반응을 일으켜 세상을 더 밝게 비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실 주님께서 돌아가신 고귀한 뜻을 깨달은 제자들은 또 다른 예수가 되어 세상으로 퍼져 나갔고,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제는 신자들을 위해서 죽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신자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속적으로 나에게 유익한 것을 버리고 오로지 신자들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또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어떠한 희생도 감수합니다. 비록 그 희생으로 인한 고통이 버겁더라도 사랑으로 인내하며, 오히려 그것을 행복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상대를 위해 죽을 때, 우리 안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충만한 기쁨과 보람이 있음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그것이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는, 그래서 피하고 싶은 고통이 아니라 내가 기꺼이 지고 가야 할 영광의 십자가라는 것을 압니다. 다시 이 말씀을 부활을 기다리는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삶의 신비는 우리의 육신이 죽기 전에 죽는 것이다. 곧 삶의 신비는 육신이 죽기 전에 자아가 죽는 것이다. 자아가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죽음이 없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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