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1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옹달샘의 물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지만,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風景도 달라진다. 같은 사물이라도 서 있는 위치나 보는 각도에 따라서 사물의 모습은 다르다. 성경 읽기도 마찬가지다.
오늘이 3월 11일이니, 빠스카 성삼일, 곧 주님 만찬의 성 목요일과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성 금요일과 부활 대축일이 이제 18일 남았다. 3주가 채 안 남은 셈이다. 이 기간동안 우리가 매일 듣게 되는 복음들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영적으로 큰 의미가 있을 듯 하다. ‘내가 만일 바리사이라면 ? 내가 만일 율법학자라면 ? 복음서들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두고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품게 될까 ?’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갈릴래아의 카나에서 두 번째 기적을 행하셨다고 보도한다. 그 당시 예수님께 앙심을 품고 있던 사람,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이 소식을 들었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왕실 관리의 아들까지도 낫게 해 주었다고? 연줄 하나 제대로 물었네.’ 이러지 않았을까?
예수님의 기적들, 행적들, 말씀들이 모든 이들에게 기쁨이요 복음이 될 수는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우리에게 순진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신앙은 먼저 우리에게 왜 우리의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순진무구하게 « 우리 죄를 대신하여 수난하고 죽으니 »라고 노래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죽어가는 아들이 살아났다고 기뻐하며, 온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도하는 오늘 복음이지만, 그 가족들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도 신앙을 유지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의 어느 구절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오늘 복음 이후에 우리가 듣게 되는 매일의 복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인간이 갖는 공통의 특성 중의 하나인 죄성罪性, 곧 죄에로 기우는 경향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게 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시절이 하 수상하다는 시대에는 신문의 행간을 읽으라고 했다. 성경 읽기 또한 마찬가지다. 성경의 행간을 읽으려는 노력을 해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두고 주님이라고 고백했던 사람들은 왜 그렇게 고백을 했는지, 예수님을 두고 죽일 음모까지도 꾸몄던 이들은 왜 그렇게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는지를 찬찬히 살필 줄 알 때, 우리들의 신앙도 ‘묻지마 그냥 믿어 !’ 식이 아닌 실존적實存的 의미를 갖는 신앙, 곧 나의 신앙이 된다. 믿으라니 그냥 믿지 뭐, 별 수 있나 식의 믿음은 결코 구원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진짜 믿음에 대해서 고민하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