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사순 제3주간 훈화)
레지오는 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
“레지오의 모든 기관은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 정당을 돕기 위하여 그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장소를 제공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교본 440쪽)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은 어떠한 경우라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없으며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의 사조직으로 전락한 레지오는 더 이상 레지오로서 존속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본 440쪽에 명시된 말은 정치인의 레지오 활동을 금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레지오 마리애라는 신심 단체의 조직이 세속의 선거나 정치 등에 이용되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자는 것이며, 따라서 간부 단원이 공직 선거 등에 출마하거나 선거 운동에 직접 개입하고자 할 때에는 먼저 간부직을 사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원으로서의 자격은 그대로 유지하며 활동할 수 있습니다.
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노파심인지 모르겠지만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를 두고 혹시나 레지오 단원 중에 선거운동을 하는 분들이 있을까 하는 연유에서입니다. 선거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톨릭교회는 선거를 통해서 모든 시민들이 참정권을 실천하기를 권장합니다. 또한 가톨릭교회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 세속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혀 정치에 무관심하고 선거까지 포기하라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속 정치가 전쟁과 학살을 자행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차별한다면 교황님을 비롯한 주교님들은 항상 불의한 정치권에 대하여 쓴 소리를 내어 왔습니다.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노도 그의 저서 『신국론』에서 ‘국가 권력은 하느님께 위임받은 것이니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국가 권력은 불의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금 문제에 대하여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 22,21)고 했지만, 이것이 정교분리를 뜻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불의하고 부당한 황제의 폭정까지도 인정하라는 해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끊임없이 위정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들이 하는 정치가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정치인들이 나오기를 기도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정책이 과연 가톨릭 사회교리에 맞는지도 식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저 표를 얻기 위해 지역과 정파를 강조하고, 구태의연한 계급과 이념 논쟁을 부추기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들의 속셈이 무엇인지를 잘 갈파해야 합니다.
아무튼 본당신부는 더 이상 정치 이야기가 성당 신자들 간에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로 간의 논쟁이 예상된다면 정치 이야기를 멈추십시오. 그리고 공식적인 모임뿐만 아니라 단톡방에서도 특정 정당과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글과 영상이 올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모두가 선거 운동과 다름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