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사순 제3주일 강론)

 

참된 성전 정화란?

 

오늘 제1독서 탈출기에 언급되는 십계명은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하느님 한 분만을 섬기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러분들은 십계명 정도는 다 외우고 계시지요? 한 번 다 같이 읊어 볼까요?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순시기 우리는 십계명을 잘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 역시도 따지고 보면 십계명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이른바 성전정화 사건인데요. 이 사건이 왜 십계명과 관련이 있을까요? 예수님 눈에는 성전 장사꾼들과 환전꾼들의 폭리가 일종의 우상숭배나 다름없다고 본 것이지요. 파스카 축제는 유다인들의 축제 중 가장 큰 축제입니다. 그래서 인파가 전국에서 몰려들었고, 성전 주변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지요. 그리고 번제물로 바칠 소와 양과 비둘기 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각 지역 화폐를 중앙 화폐로 바꾸는 환전상들이 즐비하게 장사진을 이루었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일어났다는 겁니다. 번제물을 파는 장사꾼들의 바가지요금은 물론 환율을 조작해 환전상들이 부당하게 폭리를 취한 것이지요. 종교를 빌미로 가난한 서민의 등골을 빼먹는 그들의 행태는 맘몬, 즉 돈신을 우상숭배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더 주님께서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대사제들이 장사치들의 뒷배를 봐주고 의례 뇌물과 수수료를 받았다는 겁니다. 이른바 종교 카르텔을 형성해서 조직적으로 부를 축적한 그들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시에 저버렸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평소의 온화함을 깨시고 불같은 성격으로 상을 엎습니다. 마치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경배하며 축제를 벌이자 화가 난 모세가 십계판으로 황금 송아지를 다 때려 부숴 버리고 불 질러 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불의에 의노하신 주님의 성전 정화 사건은 결국 십자가 처형의 도화선 역할을 합니다.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기득권에 도전하는 예수님은 눈엣가시였으니 온갖 빌미로 죄목을 만들어서 고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게 주님은 민중 선동 내란죄, 혹세무민 이단죄, 신성모독 불경죄로 처형 당하십니다.

 

아까 강론을 시작하면서 성전 정화 사건은 십계명과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사제들과 그 밑에 종사하는 성전 종교인들, 그리고 제사에 필요한 것들을 파는 장사꾼들은 우선 1계명부터 3계명을 다 어겼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이 아니라 돈신을 숭배했고, 그로 인해 종교라는 이름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더렵혔으며, 결국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또 부당이익을 취해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7계명을 어겼고, 번제물 값과 환율을 조작했으니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는 8계명을 어겼으며, 결국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10계명까지 어겼습니다. 오늘 복음의 성전 정화 사건은 비단 과거의 일일까요? 아니지요.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 역시도 재물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반발하는 유다인들을 향해 이 성전을 허물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공언하십니다. 처음 이 말씀을 들은 군중들을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건축광인 헤로데 대왕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은 전체 건축 기간이 무려 46년이나 걸렸거든요.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는 건축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전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상주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인하여 눈에 보이는 성전 안에는 더 이상 하느님께서 머무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되시니 말입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 개념에 착안하여 신자인 우리 몸이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이유는 성전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욕심으로 가득 차서 성전을 더럽히고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도 외적인 성전이 아니라 내적인 성전을 중시해야 합니다. 계명을 어기고 내 욕망대로 산다면 그것이야말로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성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 몸이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이고, 그 성전 안에 주님께서 항상 현존하시니 우리가 어디에 있든 결국 성전 안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내 마음의 성전을 들여다봅시다. 과연 깨끗한지. 온갖 악으로 가득한지 선으로 가득한지. 온통 빛으로 가득한지 어둠으로 가득한지. 나는 그 성전 안에 주님을 초대하고 환영하고 있는지 아니면 주님을 외면하고 추방하고 있는지 들여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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