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8일 사순 제1주일 미사 강론

by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posted Feb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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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8일 사순 제1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구약성경에서는 «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 »는 하느님의 이름, 야훼가 복음이었다.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을 예수께서는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 곧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 히브리어로 « 임마누엘 »이라고 선포하신다. 저 하늘 높이 저 멀리 있는 줄 알았던 하느님,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이신 그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 이 세상 바깥이 아닌, 이 세상 안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이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이다.
 
그리스도교의 믿음의 근본은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 », 곧 «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 »을 믿는 데서 출발한다. 가까이 와 계시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는다는 것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에서 돌아 서서, 다시 믿음의 길로 복귀하는 일체의 행위가 바로 회개다. 그저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고, 그래서 다시 소위 «착한 사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온갖 어리광을 부리고, 칭찬받기 위해 애를 쓰는 «어린 아이»-프랑스에서는 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의 칭찬과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그런 아이들을 두고 ‘슈슈’chouchou라고 부른다-로 살아가는 것만이 회개가 아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당신의 사명을 따라 걷는 길에서 벌인 싸움 전체를 집약한 것이기도 하지만,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는 복음을 믿으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그 믿음의 삶에서 유의해야 할 유혹에 대한 이야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믿는 데 방해되는 것들, 회개해야 할 꺼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재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남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능력을 탐하고, 부귀영화를 꿈꾸는 일, 이러한 일들은 우리네 일상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빵, 권력, 능력, 부귀영화, 이런 것들을 하느님의 자리에 올려 놓는 것을 두고 우상숭배라고 하며, 이 우상숭배가 유혹의 본질이다. 이런 것들은 «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에 대한 믿음을 방해하기도 하고, 흔들어 놓기도 한다.
 
유혹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돈이다. 돈의 유혹은 아주 강렬하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땅에서는 돈이 신神이 다 되었다. 돈을 향한 자발적인 복종 속에서 이 땅의 대부분의 백성은 살아간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돈으로 사람을 만들고, 돈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으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돈으로 정치인도 될 수 있고, 법도 바꿀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돈 있으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윗줄을 잘 잡을 수 있어서 굳이 법정에 서지 않아도 된다. 돈 있으면, 좀 모자라는 자식놈 대학도 보낼 수 있고, 박사학위도 살 수 있고, 예쁜 며느리, 멋진 사위도 얻을 수 있다.

그뿐인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잃어버린 젊음도 되찾을 수 있다. 그러나 돈이라는 것은 소유의 한계가 없다는 마력을 지닌다. 마력은 악마로부터 나온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돈에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다름 아닌 악마의 유혹인 것이다. 무엇이든지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바로 물신숭배요, 맘몬 숭배, 우상숭배이다.

 
예수께서 겪으셨던 유혹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다. 예수께서 받았던 유혹들은 결국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살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유혹들을 물리쳤다. 그러나 당신의 공생활 기간 중에 이러한 유혹들은 언제나 얼굴과 모습을 달리 한 채, 예수 주위에 늘 머물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유혹들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아 늘 아빠 하느님께 기도했다.
 
«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는 이 복음을 믿으면서, 하느님과 맘몬, 이 둘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 아무리 기다림보다 당장의 효과가 더 절실하고, 나눔보다 독식이 더 맛있고, 관계 회복보다는 새로운 관계 만들기가 더 쉽고 편하다 하더라도 신앙인은 하느님의 길을 걸어야 한다. 유혹들을 물리치기 위해 번민하고, 때로는 머리를 쥐어 뜯는 한이 있더라도,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그 길은 회개의 길, 쉬운 길이 결코 아니다. 어려운 길이다. 가시밭길이고, 십자가의 길이다. 우리가 그 길을 걸으면, 필경 세상은 우리를 보고, 바보라고 손가락질하고, 침을 뱉고, 조롱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부활을 알지 못한다. 부활의 영광을 알지 못한다. 그 길이 아무리 험난하다 하더라도, 그 길은 가슴 뿌듯함과 당당함을 가져다 주는 길이라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 그 길은 정의와 사랑과 희망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길이라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 그 길은 하느님의 은총을 만끽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 이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들을 하느님은 축복하신다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길을 함께 걷기 위해, 그 길 위에서 서로 서로 기대면서 서로 서로 힘을 북돋워 주기 위해, 여기 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사순 제1주일이다. 부활을 희망하고, 부활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 사순 시기를 우리 모두 함께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기쁘게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