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배운 것을 버리고, 새로 배우자!
원성현 스테파노
부곡성당·부산가톨릭대학교 컴퓨터정보공학과 교수
1980년대 초반에 필자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대학생이라면 앨빈 토플러라는 세계적인 미래학자의 저서 1~2권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권유에 따라 몇 권의 책을 읽었으나 솔직히 내용이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1980년대가 시기적으로는 3차 산업혁명시대로 분류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2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제조업 및 중화학공업이 기반을 이루고 있었고, ‘정보혁명’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역설한 그의 주옥같은 명언들을 이해하기에는 필자의 수준이 일천했기 때문이다. 당시 읽은 그의 저서 중, 1970년에 아내와 공동집필한 책 『퓨쳐 쇼크』는 내용의 10~20%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고, 그냥 읽은 것에 만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월은 흘러 2016년쯤부터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공교롭게 같은 해에 앨빈 토플러가 고인이 되면서 과거에 그가 역설했던 명언들이 하나하나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그중 필자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긴 그의 명언은 『퓨쳐 쇼크』 안의 “21세기의 문맹은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지(learn) 못하고, 배운 것을 버리지(unlearn) 못하고, 새로 배우지(relearn) 못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애써 공부하고 외운 것을 잊어버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살아온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이었으나 앨빈 토플러의 이 말은 애써 공부한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니 가히 혁명적 사고였다. 젊었을 때 배운 알량한 지식을 애지중지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가 크게 되새겨야할 명언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 하느님으로부터 하나의 통을 선물로 받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통의 크기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성장하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그 통에 계속 넣게 되면 어느 순간 그 통이 꽉 차게 되는데 그 이후 학습한 것을 그 통에 넣으려면 통 안에 먼저 들어있던 것을 꺼내 버려야만 빈 공간이 생겨 새로운 것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배운 것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삶을 고집한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평가는 ‘꼰대’라는 곱지 않은 눈총뿐이다. 앨빈 토플러가 생각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발맞춰 가려는 노력을 보여야 하는 것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만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갑진년 설날 아침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