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사순 제1주일(나해, 2024218)강론>

계절은 입춘을 보내고 어느덧 봄으로 접어들지만 그래도 겨울을 보내기가 아쉬워 한두 번 정도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수요일 참회의 상징인 재를 머리에 얹고 사순시기를 시작하여 오늘은 사순시기의 첫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기 전 40일 동안을 교회는 사순시기라 부르며 이 시기를 참회와 절제를 통한 자선을 강조하며 전례력에서 특별한 시기로 기념합니다.

40일의 사순시기 관행은 교회가 로마제국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은 4세기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의 의미를 묵상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참여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은총의 시간이기에 우리 신앙 생활사에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오늘 복음은 공관복음 중 가장 짧게 기술한 마르코 복음 사가를 통해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되기 전 먼저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와 예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사건 이후 세 번째 사건으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그 후기의 모습도 수난과 고통의 길을 가셨지만, 그 시작도 이처럼 유혹과 시련으로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마르코 복음서는 단순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지만, 마태오와 루카 복음에서는 세 가지 유혹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니다. 첫째, 탐욕과 관련된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 다음으로 허영과 교만을 부추기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 그리고 세 번째, 사탄 앞에 절을 하라는 유혹이라는 구체적인 유혹내용을 전해줍니다. 그러나 이런 사탄의 유혹들을 예수께서는 천사의 도움을 받아 의연하게 대처하십니다.

다음으로 오늘의 복음은 광야에서 사시는 모습이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다고 합니다. 이는 이사야서 116-8절과 6525절에 나오는 종말론적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무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 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고 전하는 것처럼 메시아 시대가 오면 사나운 짐승들이 유순하게 되어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지내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점과 관련된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제가 로마 유학시절 여름방학을 이용해 미국 뉴욕에서 영어공부를 하는 동안 캐나다 국경지역 아주 외딴 곳에 위치한 제네시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수도원은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제네시 일기란 책으로 유명한 수도원이었죠. 그날 한국계 2세 수사님이 입회한 지 12년 만에 종신서원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갔는데, 그 수도원은 일반 수도자들이 허원하는 복음삼덕 즉, 청빈, 정결, 순명에 침묵이란 덕목을 더 추가하여 미사나 기도를 바칠 때를 제외하면, 평생 말을 봉헌하고 살아야 합니다. 단지 종신서원식 당일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기에 그냥 말을 하고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무려 세 시간을 쉬지 않고 우리에게 자신의 삶과 체험, 그리고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제가 제일 힘든 일이 무었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젊다보니 백만 평이나 되는 밀농사를 트랙터로 혼자 추수를 하는데 그곳의 야생노루나 사슴들이 겁을 내지 않고 같이 놀자고 트랙터에 올라 오거나 앞에서도 방해를 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했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으나, 그때 제 멀리에 떠오른 생각이 위의 이사야서 말씀인 바로 종말론적인 삶으 모습니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40일간의 광야 생활을 보내신 뒤에 하느님 나라선포를 위하여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의 광야체험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도 비교됩니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고통과 유혹으로 점철되기에 불교에서는 생로병사, 즉 살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 또 죽도록 밉고 싫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고통들도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삶의 굴레 속에서 두려움과 걱정거리로 점철된 우리의 현실은 마치도 빈들에 서있는 한 인간의 모습 즉 광야에서 방황하는 한 인간을 문득 느끼게 됩니다.

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닮아 새로운 마음으로 올바로 살겠다고 기도하고 다짐하지만, 그때마다 다가오는 인간적인 유혹은 어찌 그리도 많습니까. 많이 소유하고 싶은 유혹,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유혹(PR), 편히 쉬고 싶은 유혹 등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를 않습니다. 우리 주위의 쉬고 있는 냉담자들도 잘 살펴보면 이러한 유혹을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하느님보다 자신을 더 앞에 두려는 교만한 생각에서 결국 신앙을 멀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순절은 우리 신앙인들이 의미 있게 걸어가는 광야의 길입니다. 고통을 체험하며 그것을 은혜로 성화시키는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사순시기 동안 우리의 일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고통과 유혹들은 예수님께서도 함께 당하셨음을 생각하고 이 시기만은 의연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부족함을 느끼면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분께 은총을 구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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