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코복음 1,12-15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ᆢ내보내셨다.ᆢ 사십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ᆢ"(12-13)
성령께서 악으로부터 무조건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과, 유혹과 맞대면하고 이겨내도록 미시는 분이시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유혹은 태초부터 있었고 모든 인간은 자신 내면에 존재하는 유혹과 싸웁니다.
안토니오교부는 [유혹이 없다는 것은 선택하며 살지 않는다는 것이고 유혹이 없다면 자유 역시도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과 우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광야"
침묵과 고립, 고독을 피해 살면 우리 안에 있는 유혹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성령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들짐승들 ᆢ 천사의 시중"
서로 상반되는 현실 사이에서 살고 있음을 얘기합니다.
혹 "늙은 인디언 추장의 지혜"라는 글을 읽어 보셨나요?
[ 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자기 손자에게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큰 싸움'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싸움은 또한 나이 어린 손자의 마음 속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추장은 궁금해하는 손자에게 설명했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속에서 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두 늑대간의 싸움이란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 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 것들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손자가 추장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추장은 간단하게 답하였습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5)
때는 오늘입니다.
지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멀리 있지 않고 여기에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회개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 사랑을 향해 사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결국 승리하리라 믿는 것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