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4일 재의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사순 시기는 교회 전체를 위한 참회와 쇄신의 시기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순시기는 오직 참회와 쇄신만을 위한 고통의 때, 고난의 시기인 것만은 아니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예식이 바로 오늘 우리가 행하는 머리에 재를 덮는 의식이다. 이 예식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가르쳐 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어떤 빛을 던져준다. 그리고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들에게 재의 예식을 행하는 바로 ‘오늘’이 고난으로 들어가는 날이 아니라, 큰 기쁨의 날임을 선포한다.
인간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되돌아가지만 단순히 흙으로만 되돌아가지 않는다. 적어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모두가 구원의 옷을 입게 된다. 오늘 제 2독서의 바로 앞 구절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2코린 5,19)라고 말한다. 바오로 사도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전해지는 이 « 화해의 말씀 »이란 «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2코린 5,21)라는 사실이다.
한때 가톨릭 교회가 소홀히 했고, 마르틴 루터가 그렇게 강조했던 말씀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을, 아무런 죄도 없으신 그 어린양을 우리 죄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 아드님을 죄 있는 분으로 여기셨고, 당신의 아들을 통해 스스로 죄인이 되기로 작정하셨으며, 죄인이 받는 고통을 몸소 짊어지기로 작정하심으로써, 죄인을 의로움에로, 거룩함에로 끌어올리셨다는 말이다. 무죄한 분을 죄인으로 단정하고 그 죄값을 치르게 했다는 것이다. 악과 싸우면서 악을 물리치신 것이 아니라, 악에 온전히 당신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악을 선으로 바꾸어 버리셨던 것이다. 마치 맹물 한잔에 발포성 비타민약 한 알을 던지면, 비타민은 녹아 없어지겠지만, 그 맹물 한잔은 온전히 비타민 약으로 바뀌듯이 말이다.
무엇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렇게나 잔혹하게 보이는 행동을 하셨을까? 당신의 아들을죽음의 십자가에 못박히고 매달려 죽음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게다가 예수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 모든 죄를 다 뒤집어 쓰셨을까? 그 모든 이유는 오직 한가지이다. 바로 « 우리를 위해서 »다.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그렇게 잔혹한 행동을 하셨다.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는 바보처럼 죽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우리를 위해서이다. 바로 여러분과 이 죄 많은 나를 위해서 우주 역사에서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이러한 구원 행위에 대해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신 분이다.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 바로 그 행위, 곧 십자가에 당신 아들을 못박아 죽도록 한 그 사건 안에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우직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가 막힌 방법으로 하셨기 때문이었다.
오늘,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바오로 사도는 우리 모두가 이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기를 권고한다. 우리의 뇌 속에, 깊이 새겨 놓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보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보시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 이 말씀으로 오늘 우리가 지내는 재의 수요일과 사순 시기의 의미가 드러난다. 우리의 머리에 덮은 재는 우리의 본질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더 이상 흙이 아닌 자(者)가 되리라는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바로 오늘이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이끌 수 있는 가장 기쁜 날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흙에서 왔지만, 그리고 겉으로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결코 흙으로만 돌아가지 않고 흙이 아닌 자로서의 영원한 삶이 오늘, 우리들 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 희망을 우리 가슴에 안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은총의 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