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6주일 강론)

 

영적 나병과 치유

 

성경에서 말하는 나병은 한센병 외에도 악성 피부병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에서 격리되어 혼자 살아야 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전염성 때문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인식되어 예배 공동체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병에 걸리면 그 원인이 본인의 죄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천벌을 받고 있다고 여겨진 나병 환자들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일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의 치유 기적은 단순히 병을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고, 예배 공동체에 다시 하느님의 자녀로 복귀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제에게 치유 받은 몸을 보이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사제는 당시 예배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선언이 곧 공식적인 확증이었습니다.

 

이러한 당시 유다인들의 사고방식은 의학이 발달한 요즘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나병에 걸렸다고 해서 천벌을 받고 있는 부정한 사람이니 성당에 나오지 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완치에 대한 선언은 사제가 아니라 의사가 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성경에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완전한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돕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인간성 회복은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의학 실험 결과에 따르면 신앙을 갖고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이 치유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합니다. 믿음이 신체 회복력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뜻이겠지요.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성 회복은 육신의 건강 회복에만 있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 치유 받았지만 정작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는 그분을 추종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셨지만 치유 받은 사람 중에 아무도 그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육적인 구원과 영적인 구원은 다른 것입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가면 성요셉 성당이 있는데, 이른바 기적의 안드레아 수사님과 관련된 성당입니다. 안드레아 수사님은 요셉 성인께 전구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그 증거로 성당 안에는 그동안 기적적으로 치유 받은 사람들이 버리고 간 목발과 지팡이가 천 개가 넘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은혜를 입었는지 수사님의 장례식 때는 100만명 이상의 조문객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생전에 안드레아 수사님께서 남기신 말씀이 참 인상적이서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제게 병을 치유해 달라고 부탁들을 하는데 겸손이라던가, 믿음의 정신을 구하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육체의 치유보다 훨씬 더 값진 것입니다.”

영혼이 병들면 영혼을 먼저 고쳐야 하지요.”

당신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하느님이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까?”

먼저 신부님께 고해를 하시고, 성체를 영하신 다음 저를 찾아오세요

 

안드레아 수사님은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그는 아주 깊이 있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고통받는 자들은 하느님께 봉헌할 무엇인가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이 고통을 이겨 내는 것이 바로 날마다 일어나는 기적이 되는 거지요.”

 

수사님은 고통받는 이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시련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시련을 이겨 낼 수 있는 은총을 구하십시오."

안드레아 수사님은 늘 자신이 치유 은사를 받은 것에 대해 단호히 부정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치유 은사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제가 치유해 준 것도 아닙니다.”

 

임종의 순간이 가까이 다가올 때 그는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많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아주 힘없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주님, 여기 밀알 하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224절의 말씀을 상기시켜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안드레아 수사님은 예수님처럼 하나의 밀알이 되어 묻히셨습니다. 그분은 주님처럼 정작 자신을 위해서 단 하나의 기적을 일으키지 않고 고통의 신비를 모두 받아들이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육적인 치유가 아니라 영적인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치유 기적은 하나의 징표일 뿐입니다. 그것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늘 나병 환자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한센병을 앓지는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마음이 깨끗하지 못합니다. 영적인 나병이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자신의 영적인 나병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는 버젓이 죄인이 아닌 척 살아갑니다. 요즘 갈수록 고해성사 보기를 기피합니다. 그리고 고해를 하더라도 주일미사 불참에 대한 의례적인 보고만 있을 뿐 영적인 나병을 사제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쩌면 참된 기적은 육체적인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자신의 영적인 나병을 깨닫고 진심으로 고해를 통해 치유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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